대한민국 의료 체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어 온 '의료 쇼핑'과 무분별한 다빈도 외래 이용에 종지부를 찍을 강력한 대책이 마련됐다. 보건당국이 그동안 진료 후 수개월이 지나서야 부적정 이용을 확인하던 사후 관리 방식에서 탈피해, 진료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과잉 이용 여부를 가려내는 '실시간 감시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지난 28일 개최된 전문기자단 간담회를 통해, 요양기관 간 진료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연계하는 '실시간 의료이용 관리 제도'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전격 공개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의료진이 환자를 진료하는 시점에 해당 환자의 누적 진료 이력과 타 기관 방문 기록을 투명하게 확인하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중복 시술을 사전에 방지하는 데 있다.

■ "오전엔 A 병원, 오후엔 B 병원"… 도 넘은 의료 쇼핑 실태
심평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래 이용객의 상위 0.2%에 해당하는 약 12만 명의 고빈도 이용자들이 전체 진료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연간 150회 이상 의료기관을 방문하며, 하루에도 5곳 이상의 병의원을 돌며 동일한 처치를 받는 이른바 '아웃라이어(Outlier)' 행태를 보였다.
특히 이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은 의원급과 한의원이었으며, 주요 항목으로는 통증 완화를 위한 '신경차단술', 침·뜸·부항 등의 '한방 시술', 그리고 일반적인 '물리치료'에 집중됐다. 안유미 심평원 적정의료이용추진본부장은 "현재 시스템으로는 환자가 과거 진료 이력을 숨길 경우 의료진이 이를 파악할 방법이 전무하다"며 정보의 단절이 과잉 진료의 근본 원인임을 지적했다.
■ 통제 아닌 '네비게이션'… 의료계의 '선의의 피해' 막는다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진료권 침해' 우려에 대해 심평원은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이번 시스템은 의료진을 감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복잡한 급여 기준을 인지하지 못해 발생할 수 있는 행정적 실수를 막아주는 '보호 장치'라는 설명이다.
안 단장은 "현행 사후 심사 체계에서는 의사가 환자의 중복 진료 사실을 모른 채 시술했다가 나중에 진료비가 삭감되거나 현지 조사를 받는 억울한 사례가 빈번했다"며, "실시간 시스템은 진료 중 모니터에 경고등을 띄워줌으로써 의사가 의학적 근거에 기반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진료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2027년 1월 전격 시행… 미국식 부적절 서비스 절감 모델(WiSeR) 벤치마킹
이번 제도는 미국의 공공의료보험관리기관(CMS)이 운영 중인 'WiSeR 모델'과 궤를 같이한다. 미국 역시 재정 건전성을 위해 주요 항목에 대한 사전 승인 및 실시간 관리를 강화하는 추세다. 심평원은 오는 7~8월 중 의료계와 학계, 소비자 단체가 참여하는 '적정의료이용심의위원회'를 발족하고, 객관적인 관리 대상 항목을 선정할 방침이다.
법적 토대도 이미 완성됐다. 지난 2025년 12월 개정된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요양기관의 정보 제출 의무와 시스템 구축 근거가 마련됐다. 심평원은 올해 말 시범 운영을 거쳐 2027년 정초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다만, 진료 거부에 따른 환자와의 마찰이나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 다른 항목으로 진료 수요가 옮겨가는 '풍선 효과' 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심평원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소통을 통해 제도의 완성도를 높여나갈 계획이다.
'사후 약방문' 식의 심사 체계가 실시간 과학 행정으로 진화한다. 2027년 시행될 실시간 의료이용 관리 제도가 대한민국 의료 현장의 질서를 바로잡고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 모델을 구축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