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시간
[더인사이트뉴스 박주환 기자] 서해의 바람이 강화도 언덕을 타고 흐르는 곳, 은은한 소나무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강화 학사재의 마당은 여느 때와 다른 긴장감과 생동감으로 가득 찼다. 2026년 4월 17일, 이곳에서는 우리 시대 최고의 장인으로 손꼽히는 국가무형유산 이광복 대목장의 공개 시연 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이광복 대목장이 2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묵묵히 일궈온 ‘학사재’라는 예술적 거점을 대중에게 온전히 개방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모탕고사, 하늘과 땅에 고하는 예(禮)와 가피
행사의 시작은 엄숙한 ‘모탕고사’로 문을 열었다. 모탕고사는 목수가 나무를 다듬기 위해 받쳐놓는 나무토막인 ‘모탕’ 위에서 지내는 고사다. 이는 천지신명과 토지신께 땅을 내어주심에 감사를 표하고, 건축의 시작을 알리며 대지에 새로운 생명을 세우는 작업에 대한 겸허한 보고이기도 하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전 송광사 주지 대종사 스님이 참석하여 그 의미를 더했다. 이광복 대목장은 스님의 숭고한 가피 속에 정성스럽게 술을 올리며, 집을 짓는 목수와 가주(家主)가 대대손손 무사무탈하고 그 안녕이 천대까지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관람객들은 현대 건축 현장에서 사라져가는 이러한 전통 의례를 통해, 우리 조상들이 집 한 채를 지을 때조차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의 도리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강화 학사재 27년, 집념이 빚어낸 한옥의 결정체
행사가 열린 ‘학사재(學舍齋)’는 그 자체로 이광복 대목장의 인생이자 기록이다. 1999년부터 조성을 시작해 올해로 27주년을 맞이한 이 공간은 기둥 하나, 서까래 하나에 장인의 젊은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숙련된 기술과 고뇌가 고스란히 박혀 있다.
학사재 가주 김영훈 회장은 이번 행사를 위해 공간을 쾌히 내어주며 “이광복 대목장의 숭고한 장인정신과 우리 고유의 미학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공개된 학사재 일원의 한옥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나무의 질감과 정교한 비례를 뽐내며, ‘천년을 버티는 건축’이란 무엇인가를 몸소 증명해 보였다.
◆대목장의 손길, 쇠못 없이 세우는 무적(無籍)의 요새
본격적인 시연에 들어간 이광복 대목장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으면서도 섬세했다. 그는 대형 목재의 결을 살피고 직접 먹선을 그으며, 나무와 나무가 서로를 껴안듯 맞물리는 ‘결구(結構)’ 방식을 선보여 탄성을 자아냈다. 장인의 손길을 거친 목재들은 쇠못 하나 없이도 완벽하게 결합되어 거대한 하중을 견뎌내는 구조물로 변모했다.
시연 중 이 대목장은 “나무는 살아서 백 년, 죽어서 천 년을 간다”며, “대목의 역할은 그 천 년의 시간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품고 하늘과 땅의 이치를 담아내는 근본을 세우는 일이 대목의 본질임을 시종일관 역설했다.
◆전통의 계승, 다시 천년의 미래를 짓다
이번 시연회는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으며, 젊은 건축 전공 대학생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수많은 인파가 몰려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이광복 대목장은 “전통은 박물관에 갇혀 있는 유물이 아니다. 오늘 여기서 나누는 망치 소리가 바로 살아있는 전통”이라며 후학 양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해 질 녘 강화도의 노을이 학사재의 기와지붕을 붉게 물들일 때쯤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현장을 떠나는 이들의 가슴 속에는 장인이 남긴 묵직한 망치 소리와 대종사 스님의 축원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이광복 대목장은 앞으로도 정기적인 공개 시연을 통해 우리 전통 건축의 품격을 세계에 알리는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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