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 펼쳐진 장애예술의 시간… 조선부터 1세대까지, 길을 만든 38인을 만나다

한국장애예술인 역사전 개막… 이음센터에서 장애예술의 뿌리와 현재를 잇는 특별 기획전 진행

조선시대 예인부터 산업화 시대 개척자까지, 예술로 시대를 건넌 장애예술인의 삶 재조명

역사 속 인물과 오늘의 현장이 만나는 자리… 장애예술의 가치와 미래 방향을 함께 묻다

▲대학로 이음센터 이음갤러리에서 열리는 ‘한국장애예술인 역사전-길이 된 사람들’ 포스터. 사진=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4월 장애인의 달을 맞아 의미 있는 전시를 선보인다. 오는 4월 20일부터 5월 10일까지 대학로 이음센터 이음갤러리에서 열리는 한국장애예술인 역사전 길이 된 사람들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 그리고 1세대에 이르는 장애예술인 38명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자리로, 한국 사회에서 장애예술인의 역사와 성취를 본격적으로 한 공간에 모아 소개하는 첫 전시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각 시대를 통과하며 예술로 존재를 증명한 이들의 흔적을 통해 오늘의 장애예술이 어떤 토대 위에서 이어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이번 전시에서 조선시대 장애예술인 12명은 양반과 중인, 노비 등 서로 다른 신분적 조건 속에서도 예술적 역량을 드러낸 인물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사회적 제약이 뚜렷했던 시대에도 문학과 미술, 음악의 영역에서 당대 인물들과 교류하며 뚜렷한 성과를 남겼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지나며 예술적 재능을 드러낸 인물들로 구성된 근현대 장애예술인 14명은 시대의 불안과 상처가 짙게 드리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일궈냈다는 점에서 이들의 삶이 더욱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여기에 산업화 시기 차별과 편견을 넘어 예술의 길을 닦아낸 1세대 장애예술인 12명까지 더해지면서, 전시는 하나의 역사적 흐름으로서 장애예술을 읽어내도록 구성됐다.

 

전시의 개막행사는 4월 22일 오후 2시 열리며, 역사전 인물 이야기 나누기라는 이름의 토크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전시 총괄자문을 맡은 고려대학교 문화창의학부 정창권 교수가 사회를 맡아 조선시대와 근현대 장애예술인의 삶, 창작 배경,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들을 풀어낼 예정이다. 특히 이 자리에는 1세대 장애예술인이 직접 참여해 예술 활동 과정에서 마주했던 현실과 소외의 경험을 들려주며, 과거의 기록 속 인물과 현재를 살아가는 예술가가 한 공간에서 호흡하는 구성이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전시가 지닌 의미는 장애예술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한국 예술사 안에서 장애예술인은 개별 사례로만 언급되거나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이번 기획은 장애예술을 예외적 영역이 아니라 한국 문화예술사의 한 축으로 바라보게 한다. 또한 장애를 극복의 서사로만 소비하는 대신, 각 인물이 남긴 예술적 성취와 시대적 위치를 함께 읽도록 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방귀희 이사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우리 역사 속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던 장애예술인을 소개함으로써 장애예술의 미래를 열 새로운 길을 찾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고, 정창권 교수 역시 오랜 연구와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이번 전시에 힘을 보탰다. 그는 한국장애인사 연구 분야에서 축적한 실물 자료를 전시장에 선보이며, 장애예술인의 세계가 새롭게 인식되고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에 소개되는 인물들은 각 장르와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들로 채워졌다. 조선시대에는 강취주, 김득신, 이단전, 장혼, 지여교가 문학 부문에 이름을 올렸고, 이정, 조광진, 최북은 미술 분야에서 조명된다. 음악 부문에서는 김운란, 백성휘, 윤동형, 이마지가 소개된다. 근현대 영역에서는 권오순, 서덕출, 서정슬, 이선관, 장영희, 최금동이 문학 분야에 포함됐고, 구본웅, 김기창, 김준호, 장창익은 미술, 박유전, 안병소, 유동초, 정해시는 음악 분야를 대표한다. 1세대 장애예술인으로는 김재찬, 손병걸, 주영숙이 문학, 석창우, 이정희, 이해경이 미술, 이상재, 차인홍, 최준이 음악, 김영민, 김용우, 김지수가 공연 분야에서 소개된다.

 

대표 사례로 제시된 이단전의 삶은 이번 전시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영조와 정조 시기 인물인 그는 시각장애와 언어장애가 있었지만, 주인 유언호의 지원 아래 학문을 익히고 시집 하사고를 남기는 등 그의 재능은 당대 문인 이용휴로부터 높이 평가받았다. 이는 장애를 이유로 재능과 성취가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역사적 실례로 보여줌과 동시에 한국 사회 안에 이미 오래전부터 장애예술의 흐름이 존재했다는 점을 확인하게 한다.

 

이번 역사전은 오늘의 관람객에게 장애예술의 시간과 가치를 다시 묻고, 앞으로 어떤 환경과 인식이 필요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대학로라는 상징적 문화예술 공간에서 열리는 만큼 예술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현재의 현장과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결국 길이 된 사람들은 한 시대를 버텨낸 예술가들의 자취를 따라가며, 한국 장애예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음 장면을 함께 바라보게 하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부터 근현대, 1세대에 이르는 장애예술인 38명을 통해 한국 장애예술의 역사적 맥락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기획전으로, 개별 인물의 삶을 넘어 장애예술이 어떻게 시대와 사회를 통과하며 이어져 왔는지 확인하게 한다는 점에서 교육적 의미와 공공적 가치가 크다. 관람객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던 예술사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문화예술계에는 장애예술을 동시대 창작 담론 안에서 다시 바라보게 하는 자극이 될 수 있다.

 

 

 

 

 

작성 2026.04.15 17:04 수정 2026.04.1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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