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저녁, 서울의 오래된 공원 벤치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름은 이제 거의 불리지 않는, 그냥 ‘그’라고 부르자. 손에는 낡은 어쿠스틱 기타 하나. 줄은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지만, 여전히 따뜻한 음색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기타를 퉁기며 흥얼거리는 멜로디는 늘 똑같았다.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ed so far away…
그 한 소절이 나오면 공원은 갑자기 12년 전으로 뒤바뀐다.
햇살이 아직 뜨거웠던 7월의 오후, 그녀가 아이스크림을 먹다 입가에 묻힌 크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던 장면.
“너 진짜 애 같아” 하면서도 웃음이 멈추지 않던 그녀의 눈.
그때는 모든 게 멀리 있었다. 걱정도, 다툼도, 이별이라는 단어도.
그러나 사람은 말 한마디로 어제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걸, 그는 너무 늦게 알았다.
“너는 항상 나만 생각하잖아. 나도 숨 좀 쉬게 해줘.”
그날 밤, 피곤과 짜증이 뒤섞인 목소리로 던진 한 문장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고, 다음 날 아침엔 이미 집에 없었다.
전화도, 메시지도, 이유조차 없었다.
그저 문 앞에 놓인 작은 쪽지 한 장.
“미안해. 나도 잘 모르겠어.”
그 한 줄이 아직도 가슴에 박혀 있다.
왜 그녀가 갔는지, 그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 말했는지, 지금도 모른다.
하지만 안다. 그 말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어제’는 조금 더 길게 이어졌을 거라는 것.
지금 그는 매일 저녁 이 벤치에 온다.
기타를 안고 Yesterday를 부른다.
목소리는 예전보다 많이 갈라졌고, 손가락은 굳어서 정확한 코드조차 버거워졌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그 노래를 부르는 동안만큼은 그녀가 아직 떠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이 벤치 위로 떨어진다.
그는 한 장을 집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중얼거린다.
“Yesterday…
I believe in yesterday…”
누군들 안 그러겠는가.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아직 끝나지 않은 어제를 하나씩 품고 산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햇살 아래로 다시 한 번만 걸어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그래서 이 노래는 60년이 지나도 여전히 젊다.
우리 모두가 동시에 잃어버린, 그러나 결코 버리지 못한 그 어제를 대신 불러주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오늘도 기타를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선다.
내일 또 올 테니까.
어쩌면 언젠가, 정말로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아주 작은 기대를 안고.
(사진 속처럼, 그때의 웃음은 아직도 너무 선명해서 오늘의 눈물이 더 쓰다)
그리고 멀리서 또 Yesterday의 멜로디가 들려온다.
누군가 다른 벤치에서, 또 다른 어제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어제는, 이렇게 이어져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