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역사] 110. 사쓰마 번의 ‘오키테 15조’, 류큐 왕국을 어떻게 식민 통치 구조로 재편했나

무역과 외교를 봉쇄해 류큐의 숨통을 장악하다

지행(知行)과 종교 시설 통제로 내부 권력 구조를 해체하다

‘백성 보호’를 내세워 조세 수탈의 효율을 높이다

1611년 사쓰마 번(薩摩藩)이 류큐 국왕 쇼 네이(尚寧)와 류큐 최고 권력층인 삼사관(三司官)에게 기쇼몬(기청문) 서명과 함께 강제로 받아들이게 한 ‘오키테 15조(掟十五条)’는 단순한 행정 명령이 아니었다.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이미지=AI 생성]

 

이 조항들은 류큐 왕국의 기존 질서를 부분적으로 손보는 수준을 넘어,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사쓰마 번의 이익에 맞게 다시 짜는 강제 규범이었다. 겉으로는 류큐 왕국의 외형을 남겨두었지만, 실제 내용은 독자성을 비워내고 통치 효율과 수탈 구조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핵심은 대외 교섭권과 해상 무역의 독점이다. 제1조는 사쓰마의 명령 없이 당(중국)에 물품을 주문하지 못하도록 했고, 제6조는 사쓰마의 허가 없는 상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다. 여기에 제13조는 류큐에서 다른 영지로 무역선을 보내지 못하도록 막았다. 

 

제7조 역시 류큐인을 노비로 사서 일본 본토로 데려가지 못하게 한 조항으로 제시된다. 이들 조항은 서로 분리된 규제가 아니라, 류큐의 대외 창구를 사쓰마 하나로 집중시키기 위한 연동 장치였다. 

 

즉 류큐가 스스로 수행하던 대중국·대일 무역을 차단하고, 그 이익과 결정권을 사쓰마 번이 배타적으로 흡수하려는 구조였던 것이다. 무역을 틀어쥐는 순간 류큐의 외교와 경제는 동시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내부 지배 구조를 겨냥한 조항도 매우 노골적이다. 제2조는 현재 관직에 있지 않은 자에게 영토를 주지 못하게 했고, 제3조는 여자에게 영토를 주지 못하도록 했다. 제5조는 사찰과 신사를 지나치게 많이 건립하지 못하게 제한했다. 

 

이 가운데 특히 제3조는 신녀(노로) 집단과 왕실 여성들이 토지를 소유하던 류큐 고유 체제를 직접 부정하는 성격을 띤다. 이는 단순한 제도 정비가 아니라, 류큐 사회 내부에서 토지와 권력이 분산되는 통로를 차단하려는 조치였다. 

 

또한 종교 시설 건립을 억제한 것은 사회적 잉여 자본이 종교적·의례적 공간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그 여력을 사쓰마에 바쳐야 할 경제적 부담으로 남겨두려는 계산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사쓰마 번은 류큐의 기득권 구조를 흔들고, 부의 소비처를 제한함으로써 더 많은 국부가 외부 지배권력의 요구에 복무하도록 만들었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지배층 견제와 백성 통제를 결합한 조항들이다. 제8조는 연공(年貢)과 공물을 사쓰마 봉행(奉行)이 정한 기준대로 납부하게 했고, 제4조는 개인적으로 사람을 노비로 삼지 못하게 했다. 제12조는 촌민이나 농민에게 정해진 부역 외의 무리한 비도(非道)를 명령하는 자가 있다면 가고시마의 사쓰마 당국에 호소할 수 있도록 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는 류큐 백성을 보호하는 규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시된 내용만 놓고 보면, 그 목적은 백성의 권리 신장보다 조세 수탈 기반의 안정에 있었다. 류큐 지배층이 사적으로 인신을 구속하거나 과도한 수탈을 일삼아 농민층이 붕괴하면, 결국 사쓰마가 거둘 연공과 공물도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조항들은 인도주의적 보호 장치라기보다, 생산력을 유지하고 세원을 보전하기 위한 관리 장치로 기능했다.

 

일상과 경제 질서를 재편한 조항들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14조는 일본의 되인 교마스(京枡)만 쓰도록 하여 도량형을 일본식으로 통일했다. 이는 조세 산정과 경제 통제의 기준을 사쓰마가 익숙한 방식으로 맞추는 효과를 낳는다. 

 

동시에 제9조는 삼사관을 제쳐두고 다른 사람을 따르지 못하게 했고, 제10조는 강매와 강탈을, 제11조는 싸움과 말다툼을, 제15조는 도박과 인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금지했다. 

 

이들 조항은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도덕 규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쓰마의 간접 지배가 흔들리지 않도록 내부 마찰을 줄이고 공식 통치 라인을 고정하는 의미를 가진다. 특히 삼사관의 권위를 세워준 것은 류큐 자치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사쓰마의 명령을 현지에서 실행할 공식 관료 체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결국 ‘오키테 15조’는 억압의 나열이 아니라 설계된 통치 문서였다. 대외 무역을 묶어 경제적 자율성을 끊고, 지행 분배와 종교 시설을 제한해 내부 권력과 자본의 흐름을 통제했으며, 백성 보호를 내세워 세금 생산 기반을 지키고, 도량형과 일상 질서를 일본식 통치 규격에 맞췄다. 

 

류큐 왕국의 이름과 외형은 남겨두었지만, 그 안의 정치적 결정권과 경제적 여유, 사회적 자율성은 조항별로 잘게 분해되었다. 이 점에서 ‘오키테 15조’는 사쓰마 번이 류큐의 국부와 무역 이익을 장기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만든 식민 통치의 핵심 법령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사쓰마 번의 ‘오키테 15조’는 류큐 왕국의 겉모습을 유지한 채 내부 구조를 재편한 법적 장치였다. 핵심은 류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류큐를 남겨둔 채 사쓰마의 이익에 맞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데 있었다. 따라서 이 15개 조항은 류큐 지배의 실체를 보여주는 가장 압축적인 문서이자, 수탈과 통제를 제도화한 식민 법령의 전형으로 읽힌다.

작성 2026.04.02 08:51 수정 2026.04.0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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