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쪽으로부터 꽃 소식이 전해오고 있다. 거제도 대금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대금산은 진달래 군락지로 유명한 곳이다.
날씨가 좋은 날 대금산 정상인 시루봉에 오르면 멀리 부산 다대포와 송도까지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 6월 이순신 장군은 걸망개(巨乙望浦,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신봉마을)에 머물면서 거제도 대금산에 망군을 배치하여 정보를 수집했다.
당시는 견내량 차단작전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였다. 이순신 장군은 이후 걸망개 건너편에 있는 한산도 두을포가 수군 기지로 최적임을 알고 1593년 7월 여수에서 한산도로 진을 옮겼다.
1592년 이른 봄날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 관내 5포를 순시하면서 백야곶 감목관(여수시 화양면 안포리)을 지날 때 온 산에 피었다고 하는 산꽃(山花)도 역시 진달래다. 1592년 음력 2월 19일(양력 4월 1일) 난중일기에는 "본영을 떠나 백아곶에 이르니, 비가 온 뒤라 진달래가 활짝 피어 그 경치의 아름답기가 형언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이어서 2월 20일(양력 4월 2일) 일기에는 "늦게야 떠나 흥양으로 오는데, 좌우 산에는 진달래꽃이요, 저편 들녘에는 곱게 피어나는 풀잎들로 산과 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옛날에 신선이 사는 곳이 있었다더니, 바로 이런 경치가 아니었을까?"라고 했다. (김종대, 의역 난중일기)
구한말에 범선 팔라다호를 타고 한반도 남해안을 측량한 러시아 해군 대위 콘스탄틴 포세트도 이순신 장군처럼 분홍빛 진달래와 푸른 바다 푸른 초목의 조화에 반하여, 진달래 몇 그루를 파 가서 블라디보스토크 언덕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연해주의 꽃 진달래는 우리 남해 바다에서 그때 그 장교가 가져간 묘목의 후손이다.
1922년 대표 시 '진달래꽃'을 발표한 김소월이 이 소식을 들으면 천국에서 크게 반가워하며 "아, 그랬구나. 330년 전 그때 그 봄에도 그랬구나"
라고 기뻐할 것 같다.
대금산에 이어 마산 무학산과 창녕 화왕산에도 진달래가 만발했을 것이다. 곧 이어 부천 원미산과 강화도 고려산에도 진달래가 산을 뒤덮을 것이다. 산 너머 남촌에서 꽃바람이 불어오는데 어찌 방구석에만 앉아 있을 수 있으랴.
[이봉수 논설주간]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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