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칼럼] 레바논, 전쟁 발발 18개월 후,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베이루트의 멈춘 시계: '가자'가 되어가는 레바논, 그 비극의 심연

6세 아이부터 조부모까지... 한 가문을 지워버린 '정밀 타격'의 민낯

"차라리 폭격이 안심돼요" 레바논 여인의 고백, 중동 전쟁의 잔인한 심리학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정지된 도시, 주차장이 되어버린 간선도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한때 '중동의 파리'라 불리며 번영을 구가하던 이 도시의 혈관인 간선도로는 이제 기이한 정적에 휩싸여 있다. 평소라면 지독한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았을 길 위에는 수천 대의 차들이 미동도 없이 서 있다. 한 택시 기사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는다. "처음엔 지독한 정체인 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었어. 저건 그냥 버려진 채 삶의 터전이 된 '주차장'이야."

 

지난 2026년 3월 2일, 헤즈볼라가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죽음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에 발사체를 쏘아 올린 이후, 레바논의 운명은 다시 한번 화염 속으로 던져졌다. 불과 18개월 전, 이스라엘 군(IDF)이 헤즈볼라를 뿌리 뽑겠다며 남부를 침공했을 때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더 무겁고 잔혹한 폭격이 레바논 전역을 짓누르고 있다. 베이루트의 담벼락마다 새겨진 과거 전쟁의 흉터 위로, 새로운 파편의 흔적이 덧칠해지고 있다.

 

아이들의 장례식, 그리고 무너진 '레드라인'

 

남부의 작은 마을 이르카이(Irkay). 이곳에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극이 현실이 되었다. 단 한 번의 공습으로 한 가문의 뿌리가 뽑혔다. 6세에서 13세 사이의 어린 남매 다섯 명이 조부모의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이들을 돌보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건너편 집에 있던 삼촌들까지 모두 9명이 한순간에 흙더미 속에 묻혔다.

 

장례식장 너머로 이스라엘의 포성이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기괴한 풍경 속에서, 유족들은 절규한다. "여기에 헤즈볼라가 어디 있었느냐? 우리는 그저 가족일 뿐이다." 아이들의 아버지 무함마드 리다 타키는 부서진 몸을 이끌고 묻는다. 이 집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폭탄은 정밀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유니세프(UNICEF)의 통계는 더욱 비정한 현실을 증명한다. 2024년 분쟁 당시 사망한 아동 수를 이미 훌쩍 넘어섰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이번 전쟁 시작 이후 최소 111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 군 대변인 나다브 쇼샤니는 이 모든 비극의 화살을 헤즈볼라에게 돌린다. "테러 조직이 민간인을 방패로 삼고 있다"라는 논리다. 그러나 좁은 창문 하나만을 정확히 타격하는 그들의 '정밀 타격'이 왜 아이들이 잠든 침실은 피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공허하다.

 

'가자'라는 공포의 투영: 사라진 레바논

 

레바논 사람들을 가장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는 것은 현재의 폭격보다 '미래의 부재'다. 가자지구가 거대한 달 표면처럼 변해버린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이제 자신들의 조국이 그다음 차례가 될 것임을 직감한다. 이스라엘 재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히의 "레바논 남부 외곽은 칸 유니스처럼 될 것"이라는 발언은 단순한 엄포를 넘어선 예고장으로 들린다.

 

피난민 쉼터에서 만난, 사나 고슨 할머니는 흐릿한 눈으로 말했다. "레바논은 풍요로웠어. 하지만 이제 레바논은 없어. 파괴되었으니까. 가자의 비극이 우리에게 되풀이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야." 100만 명에 달하는 피난민이 베이루트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사회적 균열도 시작되었다. 집주인들은 세입자의 성씨를 묻고 외모를 살핀다. 혹시라도 헤즈볼라와 연계된 시아파 무슬림일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전쟁은 물리적 건물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엇갈린 시선: 이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2024년 전쟁 당시만 해도 레바논 내부에서는 이스라엘에 맞서는 헤즈볼라에 대해 어느 정도 결집된 지지가 있었다. 가자지구의 비극에 대한 공감대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베이루트의 다민족 거주지에서 만난 정비공 사코 데미르지안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아이들이 죽어나가는데, 이 전쟁이 왜 필요했나? 이란을 지원한다고?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이곳은 이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정부는 헤즈볼라의 무장 해제를 약속하지만, 거리의 체감 온도는 차갑다. 국제 구호 단체들의 예산은 삭감되었고, 유엔난민기구(UNHCR) 관계자는 30년 근무 역사상 지금처럼 절망적인 상황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기부금 삭감은 굶주린 피난민들에게 마지막 남은 생명줄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항구의 텐트, 그리고 잊혀진 약속

 

베이루트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텐트촌. 2020년 대폭발로 수백 명이 죽고 도시 절반이 날아갔던 그 비극의 항구 근처에, 이제는 전쟁 피난민들이 진을 쳤다. 라마단 기간, 해 질 녘 이프타르(금식 후 첫 식사)를 나누는 봉사자들의 손길이 분주하지만, 텐트 속 아이들의 눈망울에는 배고픔보다 더 큰 공포가 서려 있다.

 

이스라엘의 공습경보 문자가 올 때까지 숨을 죽이며 기다리는 삶. "차라리 폭격이 떨어지면 '이제 끝났다' 싶어 안도감이 든다"라는 한 여인의 고백은 이 전쟁이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철저히 고문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마지막 온기

 

오늘 밤도 베이루트의 하늘은 인공적인 불꽃으로 번쩍일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정리하며, 이르카이 마을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 다섯 아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 아이들이 원했던 것은 대단한 정치적 승리도, 종교적 순교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할머니가 구워주는 따뜻한 빵 냄새를 맡으며 잠드는 평범한 저녁이었을 뿐이다.

 

전쟁의 수치와 통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체온을 느껴본다. 주차장이 된 도로 위에서 낡은 라디오를 틀어놓고 가족의 안녕을 기도하는 아버지의 거친 손마디, 낯선 피난민에게 이프타르 음식을 건네는 자원봉사자의 떨리는 목소리. 그 속에서 나는 아직 꺼지지 않은 인류애의 불씨를 본다.

 

우리는 거대 담론의 홍수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잊고 산다. 국가의 이익이나 정파의 명분보다 앞서는 것은, 단 한 사람의 생명이 누려야 할 존엄이다. 레바논의 시계는 멈춰 섰지만, 그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부디 이 잔혹한 폭격의 계절이 지나가고, 베이루트의 간선도로가 주차장이 아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달리는 길로 되돌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마지막 온기, 그것만이 이 얼어붙은 전쟁의 겨울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작성 2026.03.26 14:42 수정 2026.03.2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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