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여 년 전 한반도는 반도의 지리적 폐쇄성으로 인하여 외부적으로는 북방 세력의 압박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여건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조정의 당파싸움과 관료들의 부패로 질곡의 상황 속에서 백성들은 궁핍한 일상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척박한 상황이었다. 어려운 시대 상황을 타개하고자 정약용은 백성과 국가를 위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한 시공을 초월한 불세출의 인물이다. 특히, 그는 언제나 백성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구상하고 아이디어를 창출했다. 그야말로 ‘新我之舊邦(신아지구방; 나의 낡은 나라를 새롭게 하겠다)’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벼슬길에서뿐만 아니라 18년의 긴 ‘유배’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백성을 위한 학문적 탐구와 실행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희생정신과 비전은 가히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았다.
다산 정약용, 2012년 유네스코(UNESCO)로부터 동양인 최초로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된 그가 남긴 유산은 시대의 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크나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철학자이자 사상가, 혁신가 등의 아이콘으로써 자리매김하는 그가 우리의 선인이라는 점만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오늘날 민족의 후예들은 그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대 시민사회는 그의 사상과 철학을 고백의 대상이자 학문적 깊이로만 간주하며, 그에 대한 접근이 감히 어려운 벽처럼 느끼는 것을 보았다. 그러한 연유로 그의 위대한 업적과 가치가 널리 전파되지 못하고, 우리 사회와 시민들 사이에서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저자는 40여 년 전에 우연한 기회에 마재마을 방문길에 유적지를 접하면서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흥분상태였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는 데는 숱한 세월이 흐른 뒤였다. 교수로 재직 중에 법인을 설립하여 운영해 오면서 위대한 사상과 철학을 대중적으로 전파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시공을 초월하여 당시 여건과 처신하신 발자취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특히 고전을 배우는 근본 목적인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즉 ‘옛것을 본받아 새롭게 창조한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격변하는 역사 시대(Historical Era)에 정약용은 전통적인 가치와 그 당시의 요구를 잘 조화시키고자 노력했다. 정약용의 사상은 현대 디지털 시대(Modern Digital Era)를 맞아 여전히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줄 뿐만 아니라 미래 첨단시대(Future High-tech Era)에도 문제 해결에 매우 유용할 것으로 예견되는 철학이라 하겠다.
저자는 공직자, 사회단체, 교사나 학생, 일반 시민 등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로 한 강연과 세미나 등 각종 학술행사를 통하여, 많은 현대인들이 다산 사상에 대한 지식의 갈급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에 그들은 정약용을 현실적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인물로 여기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정약용이 시대를 초월하는 대철학자이자 사상가로서의 중압감 속에서 부분적 또는 단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인들의 바쁜 생활 속에서 효율적으로 접근을 시도할 수 있는 자료의 한계를 들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이러한 난점을 해소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약용을 더 많은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과 서술을 쉽게 풀어내고자 하였다. 그의 사상과 철학은 단순히 책 속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우리가 해결해야 할 오늘날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곧 현대적 의미의 실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이 그의 위대한 사상과 깊이를 더 많은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저술하는 과정에 있어서 정약용이 방대한 양의 저작을 통하여 그의 사상과 지식을 전파한 당시는 한글 창제 이후의 시대일지라도 한문 표기된 저작물의 원전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스럽게 선행 연구자들의 번역 산물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연구 산물을 축적해 가는 과정에서 현재의 남양주 마재마을과 유배지 강진을 비롯하여 관련 전국의 유적지를 수차례 탐방하였다. 후손과 향토 문화 연구가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의 마재마을 요도를 복원한 결과물이 교과서에 실리고, 유적지 전시관의 오류 기록도 바로잡는 부가적인 성과도 있었다. 우리는 정약용을 현대적 시각에서 다시 바라보고, 그의 생각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의 사상은 오늘날의 사회와 정치, 경제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가 추구한 가치와 철학은 우리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에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덧붙여 다산 사상을 연구하거나 독서함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사항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그의 철학과 사상을 연구하면 할수록 가히 경이롭고 불가사의함을 느끼면서 오히려 숙연해진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선각자이지 마치 신이나 초능력자로 간주하거나 지나치게 과장 또는 미화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장기간 불우한 여건 가운데에서도 다방면으로 전무후무한 연구 산물을 창출해낸 것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어떤 인물과도 비교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한 치적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자체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저술의 목적이, 위대한 사상가의 생애와 산물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부담 없이 다산 정약용을 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책을 단순하게 교양서로 인식하기보다 지혜롭게 현실에 대처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혜안의 마중물로써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또한 바쁜 생활하는 현대인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발췌독이나 통독으로 일상 대화의 소재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자소개>
저자 김응수
강원특별자치도 영월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학사)와 연세대학교(석사)에서 행정학을, 경남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을 공부했다. 육군대학 교수와 육군3사관학교 생도연대장을 역임했다. 용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통일안보전략연구소를 설립하여 소장을 역임했다. 동국대 · 한국외대 · 충남대 대학원에서도 강의했다. 현재 다산사상 대중화와 북한문제 전문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다산사상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다산누리포럼과 다산사상실천연구회를 운영하며, 관련 저술 활동과 공직자 및 사회단체 강연 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다산시대 마재마을 요도〕를 복원하여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하였다. 이 분야 저서로는 『열수』, 『다산 정약용, 변화의 시대에 돌아오다』 등이 있다.
북한문제 관련 국내외 학술세미나에 참가하고 있으며 『21세기 북한의 이해』, 『김정은 시대 북한의 이해』, 『변환기 북한 바로알기』, 『글로벌 테러리즘』 등을 저술하였다.
<이 책의 목차>
제1부. 다산 사상을 접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들
01. 정약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어떠한 자세가 필요한가요?
02. 실학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 태동하게 되었나요?
03. 정약용이 태어나고 성장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어떠했나요?
제2부. 8대 옥당 집안에서의 출생과 성장
01. 정약용은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요?
02. 정약용이 사용한 호는 어떤 것이 있나요?
03. 정약용의 부모는 어떤 분들이었나요?
04. 정약용의 형제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05. 누구로부터 공부를 배우고, 남다른 영특함이 있었나요?
06. 정약용의 결혼생활은 어디서 시작했나요?
07. 정약용의 자식은 몇 명이었나요?
08. 정약용의 당색은 어떻게 분류되었나요?
제3부. 역량 개발과 정조의 선택
01. 과거 준비는 어디에서 했고, 누구의 영향을 받았나요?
02. 정약용은 다양한 분야의 많은 양을 어떻게 공부했나요?
03. 정약용은 무슨 직위로 관직생활을 했나요?
04. 정약용은 언제 정조를 처음 만났나요?
05. 정조는 정약용을 어떠한 사람으로 인식했나요?
06. 정약용의 성균관 생활은 어떠했나요?
07. 정조의 총애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이고, 어느 정도였나요?
08. 배다리와 수원 화성을 설계하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요?
09. 암행어사로서 활약한 대표적 사례는 어떤 것이 있나요?
10. 정조가 정약용을 형조참의에 보직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11. 정조의 사망 전후 정약용의 입지는 어떻게 대비되나요?
제4부. 삶의 전환점을 가져온 천주교와의 만남
01. 우리나라에 천주교의 전래는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02. 정약용과 형제들이 천주교를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03. 천주교 도입은 전통의 관습과 왜 상충되었나요?
04. 천주교가 문제된 이후 정약용은 어떻게 처신했나요?
05. 신유옥사가 정약용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06. 정약용 형제들은 천주교 박해 과정에서 어떠한 피해를 입었나요?
제5부. 위기를 기회로 만든 유배생활
01.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 가는 과정은 어떠했나요?
02. 정약용은 유배 기간에 주로 어떤 학습 활동을 했나요?
03. 정약용의 제자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요?
04. 정약용이 유배지 강진에서의 영농 활동은 어떻게 했나요?
05.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가족들과 어떻게 소통했나요?
제6부. 해배 이후의 삶
01. 정약용은 언제 유배에서 풀려 고향에 가나요?
02. 정약용은 해배된 후 고향에서 어떤 생활을 했나요?
03. 정약용은 왜 묘지명을 스스로 지었나요?
04. 해배 이후 유배지 사람들과의 교류는 어떻게 했나요?
제7부. 혁신을 향한 학문 연구와 저술 활동
01. 정약용의 학문체계는 어떻게 구성되었나요?
02. 정약용의 경학 연구는 무엇이 중심이었나요?
03. 사서의 핵심 내용은 무엇이고, 정약용은 어떻게 해석했나요?
04. 육경의 핵심 내용과 정약용의 해석 특징은 무엇인가요?
05. 경학의 마지막 단계 저술은 무엇인가요?
06. 경세학의 핵심 저작은 어떤 것이 있나요?
07. 『경세유표』의 핵심 내용과 교훈은 무엇인가요?
08. 『목민심서』의 주요 내용과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요?
09. 『흠흠신서』의 핵심 정신과 주요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었나요?
10. 『여유당전서』는 언제 발간되었고, 어떻게 구성되었나요?
11. 정약용은 서학 내지 서양의 과학기술을 어떻게 평가했나요?
12. 정약용의 국방 관련 저술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제8부. 역경 극복을 위한 자녀 교육과 구휼 활동
01. 전문의도 아니면서 어떻게 왕실의 부름을 받았나요?
02. 정약용이 저술 · 참고한 의학서적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03. 정약용은 자녀 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했나요?
04. 효제(孝悌) 사상은 사회 질서 유지와도 연관성이 있나요?
05. 정약용이 구상한 토지제도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제9부. 폭넓은 문예 활동
01. 정약용은 문학 사상의 방점을 어디에 두었나요?
02. 생애의 시대별 시(詩) 문학의 대표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03. 하피첩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작성했나요?
04. 정약용은 어떤 연유로 불교 관련 저술도 했나요?
05. 정약용의 서화(書畫)는 어떤 작품이 있나요?
06. 정약용은 음악의 기능과 가치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이었나요?
<이 책 본문 中에서>
“정약용은 유교문화가 사회 전반에 거쳐 지배하는 시대의 인물이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판단이나 윤리 · 도덕적 판단 기준이 현재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정약용은 대학자, 성인의 차원을 넘어서 성현 반열의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당시의 시대상과 현재의 환경을 고려하여 그의 삶과 인생관, 가치관을 평가해야 한다. 따라서 무조건적 신격화나 무결점 인물로 우상화하는 자세도 경계해야 한다.”
“정약용은 1801년부터 18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면서 자신에 대한 성찰과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정신적 ‧ 육체적 한계를 초월하여 혼신의 노력으로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그것은 탐구욕이나 명예욕이라기보다는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과 더불어 자신의 큰 꿈, 곧 경세치용(經世致用)과 사회개혁의 의지와 구상을 학문으로나마 완성하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또한 현실 정치에서는 이미 좌절당한 큰 꿈을 미래의 개혁 세대를 위해 학문적으로나마 준비하고 완성해 놓겠다는 의지 때문에 집필에 열정을 다하지 않았겠는가.”
“정조는 정약용과의 성리학 토론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고 전해지며, 1천여 권의 유교 경전을 놓고 연구했던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였다고 전해진다. 정약용의 이와 같은 지식체계는 다독(多讀)과 항상 문제의식과 대안을 동시에 생각하는 그의 평생학습 태도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서학 즉 천주교와의 만남은 정약용의 삶에 있어 가장 운명적인 순간 가운데 하나다. 우선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보면 실학을 중시하던 정약용이 서구 물질문명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당연했다. 정약용의 사상적 기반이 유신론인가 무신론인가 하는 데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천주교 사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 사회는 사회변동과 문화변동이 크게 일어남으로써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반발과 아울러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효제 사상은 단순한 가족 내 도덕적 가치가 아니라 사회적 도덕 규범으로 확장될 수 있다. 사회인들이 효와 제를 실천하면 사회 내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형성되며, 이는 갈등을 줄이고 사회적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예를 들어, 효를 실천하는 사람은 노인을 존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이는 사회적 노인복지와 세대 간의 존중을 증진시키고, 상호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게 된다.”
<추천사>
『다산 정약용, 변화의 시대에 돌아오다』는 정약용을 깊이 있게 연구해 온 한 연구자의 질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정약용의 삶과 저술을 읽고 정리해 온 저술가로서, 변화의 시기를 통과하며 형성된 그의 사유의 기준을 오늘의 언어로 정돈해 제시한다. 이 책에서 저자의 관심은 정약용의 성과를 나열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며 그가 어떤 기준으로 현실을 이해하고 판단했는지를 현재의 문제의식 속에서 다시 읽어내는 데 놓여 있다.
정약용이 살았던 조선 후기 역시 정치와 제도가 흔들리고 사회 전반의 질서가 재편되던 시기였다. 저자는 이 시대적 배경을 차분히 짚어가며, 정약용의 사유가 형성된 조건과 문제의식을 독자의 이해 위에 놓는다. 정약용을 다시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의 사유를 통해 현재의 기준을 점검하고, 독자가 스스로 질문을 세울 수 있도록 사유의 방향을 정돈하는 일이다.
제1부 ‘다산 사상을 접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들’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200여 년 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정약용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단순한 역사적 관심이나 과거에 대한 향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어떤 기준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에 가깝다. 제도는 정교해졌지만 신뢰는 약해지고, 공공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권한은 종종 사적 이해와 뒤섞인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의 구조적 혼란과 겹쳐 보며, 그의 사유가 지금도 여전히 의미를 지니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한다.
이 책의 특징은 정약용을 읽는 태도를 분명하게 정리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정약용의 사상을 하나의 개념이나 학파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그의 삶과 시대, 그리고 현실 문제에 대한 대응 속에서 사유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약용의 글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구체적인 문제에 응답하며 형성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약용의 결론을 전달하기보다, 그가 질문을 세우고 현실을 분석하며 해법을 구성해 가는 사고의 과정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중반부에서 다루는 『목민심서』는 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 저자는 『목민심서』를 조선 시대 지방관을 위한 행정 지침서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한 공직 윤리와 행정의 기본 원칙을 담은 텍스트로 바라본다. 책은 『목민심서』의 핵심정신을 네 가지 가치로 정리한다.
공정은 사적 이익을 배제하고 공적 업무에 전념하는 자세이며, 청렴은 재물을 탐하지 않는 깨끗한 정신이다. 애민은 백성을 자식처럼 아끼는 마음이고, 실사구시는 현실의 문제를 정확히 보고 해결을 모색하는 태도이다.
이 네 가지 가치는 단순한 도덕적 덕목이 아니라 사회가 지속되기 위한 제도적 원리이기도 하다. 공정은 제도의 신뢰를 세우고, 청렴은 권력이 사유화되는 것을 막는다. 애민은 행정이 존재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하고, 실사구시는 문제 해결의 방향을 현실 속에서 찾도록 이끈다.
이 책이 보여주는 정약용의 사유는 미래로 향한다. 오늘의 사회가 맞닥뜨린 새로운 문제들 속에서 이 사유는 더욱 확장될 가능성을 지닌다. 인공지능과 데이터가 행정을 바꾸고, 사회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는 시대일수록 제도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은 더욱 중요해진다. 기술은 발전할 수 있지만 공정과 책임, 그리고 사람을 향한 시선이 사라지면 제도는 쉽게 신뢰를 잃기 때문이다.
정약용이 강조했던 공정과 청렴의 원칙은 미래 사회의 행정과 정치에서도 여전히 중심이 될 수 있다. 투명한 제도와 책임 있는 권력, 그리고 시민을 존중하는 공공의 정신은 어떤 시대에도 필요하다. 또한 애민의 정신은 단순한 통치 철학을 넘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공동체의 균형을 지키는 정책적 기준으로 확장될 수 있다.
실사구시의 태도 역시 미래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이념이나 구호보다 현실의 문제를 정확히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는 태도가 요구된다. 정약용이 보여준 사고방식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오늘의 사회가 배울 수 있는 하나의 지적 모델이 된다.
『다산 정약용, 변화의 시대에 돌아오다』는 정약용이라는 한 사상가를 다시 읽게 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살아있는 질문으로 남는다. 또한 정약용의 사상은 시대를 넘어 반복해서 읽힐 이유가 있다. 그것은 결국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 공정과 책임이 작동하는 사회를 향한 사유이기 때문이다.
(김응수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268쪽 / 신국판형(152*225mm) / 값 16,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