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걸린 장엄한 폭풍우 그림 앞에 두 관람객이 서 있다. 한 명은 이 그림을 19세기 화가가 고통 속에서 그린 것이라 믿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어제 AI가 10초 만에 생성한 이미지라고 알고 있다. 두 사람의 눈에 맺힌 색채와 구도는 완벽히 똑같다. 하지만 그림을 바라보며 느끼는 벅차오름과 그림 속 재난 생존자를 향한 연민의 깊이는 전혀 달랐다.
왜 우리는 기계가 만든 예술 앞에서 덜 감동하는가? 이 오래된 미학적 질문에 과학이 명확한 데이터로 답을 내놓았다.

경외감이 사라진 자리에 공감도 메말랐다
최근 심리학 전문 매체 싸이포스트(PsyPost)는 생성형 AI 예술이 인간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보도했다. 연구진이 1,500명 이상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똑같은 예술 작품을 보여준 뒤, 절반에게는 '인간이 그렸다'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AI가 생성했다'고 정보를 주었다.
결과는 명확한 '심리적 연쇄 반응'의 증명이었다. 작품이 AI의 결과물이라고 인지한 사람들은 그림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Awe)'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심리학에서 경외감이란 나보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타인과 세상에 연결되게 만드는 핵심 감정이다.
연구진은 이 경외감의 상실이 곧바로 '공감(Empathy)의 차단'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림 속 고통받는 대상을 보며 느끼는 연민이 식어버렸고, 이는 전시 관람 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실제 행동 비율까지 현저히 떨어뜨렸다. 아름다움(Aesthetic)은 남았지만, 타인을 향한 울림(Resonance)은 증발해 버린 것이다.
우리는 결과물이 아닌 '의도'를 소비한다
이 연구가 던지는 함의는 단순히 "AI 예술이 열등하다"는 1차원적 결론이 아니다. 이 데이터는 역으로 "인간이 예술에서 진정으로 갈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회화나 영상을 감상할 때 시각적 정보만을 처리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캔버스 뒤에 숨은 '창작자의 마음'을 더듬는다.
그가 어떤 의도로 이 장면을 연출했는지, 어떤 결핍 속에서 이 은유를 길어 올렸는지 타인의 내면을 해독하려는 본능이 발동한다. 그러나 기계 앞에서는 이 과정이 무용지물이 된다. 화면 뒤에 '느끼고 경험하는 주체(Experiencing subject)'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인간의 뇌는 감정적 동기화를 멈춘다.
그렇다면 AI 창작자는 무엇을 돌파구로 삼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현실적인 의문이 남는다. 이미 현업에서 AI로 영화를 찍고, 광고 영상을 만들고, 일러스트를 기획하는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은 이 '공감의 결핍' 앞에서 어떻게 작업을 지속해야 할까? AI를 쓰는 순간 내 작품은 감동을 줄 수 없으니 포기해야 하는 걸까?
해답은 창작의 무게중심을 '픽셀의 생성'에서 '맥락의 직조'로 옮기는 데 있다.
과거의 예술가가 붓터치 하나, 조명 세팅 하나에 자신의 영혼을 담았다면, AI 필름 메이커나 광고 감독은 '기획의 의도'와 '메시지의 취약성'을 통해 인간의 냄새를 묻혀야 한다.
AI가 만든 화려하고 완벽한 영상미 그 자체로는 관객을 울릴 수 없다. 하지만 그 영상을 관통하는 내러티브가 감독 본인의 뼈아픈 상실감에서 출발했다거나, 우리 시대의 가장 불편한 진실을 날카롭게 질문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관객은 AI가 그려낸 매끄러운 픽셀 너머에 있는 '인간 감독의 절박한 질문'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도구가 기계일 뿐, 발화자(Speaker)는 명백히 피와 살을 가진 인간임을 작품 안팎으로 증명해 내는 것이다.
완벽한 생성(Generation) 너머, 불완전한 기획(Direction)의 시대로
결국 AI 시대의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프롬프트를 다루는 기술 이전에, 타인과 세상을 향한 깊은 이해와 철학이다. 기술이 아무리 매끄러운 완벽함을 구현해 내더라도 알고리즘은 스스로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를 묻지 못한다.
AI 예술의 공감 결핍을 밝힌 이번 연구는 창작자들에게 절망이 아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 기계가 완벽한 이미지를 0.1초 만에 뱉어내는 시대, 대중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것은 기술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기술을 딛고 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불완전한 인간의 의도'다. 창작자의 진짜 싸움은 이제 프롬프트 창 바깥에서 시작되고 있다.
[편집자주: Pocus 피처를 시작하며]
속보(Straight news)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전한다면, 피처(Feature) 기사는 '왜' 일어났으며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남기는지 질문합니다. [Pocus 피처]는 쏟아지는 기술의 홍수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심층 기획 코너입니다. 문학적인 서사와 과학적 데이터를 교차하며, 예술의 본질과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무거운 질문들을 가장 흥미롭고 우아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냅니다. The Imaginary Pocus가 지향하는 상상하는 인간중심 저널리즘의 사유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