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1시 30분.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모니터 속 캔버스는 여전히 시리도록 하얗다.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것은 "사이버펑크 풍의 느와르, 하지만 너무 차갑지 않게, 90년대 서울의 감수성을 한 스푼 넣어서"였다. 예전 같으면 핀터레스트를 뒤지고, 영화 스틸컷 수십 장을 띄워놓고, 스케치북에 연필로 구도를 잡으며 밤을 새웠을 것이다. 그 고통스럽지만 충만한 '잉태'의 시간을 나는 사랑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다른 창을 켠다. 익숙하게 프롬프트를 입력한다.
/imagine prompt: cyberpunk noir street in 90s Seoul, warm neon lights, rainy texture, melancholic atmosphere --ar 16:9
엔터키를 누르는 손가락 끝에 미세한 죄책감이 묻어난다.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수십 번 단어를 깎고 매만지다 보면, 어느새 AI는 내가 며칠을 끙끙대며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이미지를 그럴싸하게 뱉어낸다. "훌륭해." 나도 모르게 감탄하고, 곧바로 스스로에게 묘한 환멸을 느낀다. 나는 낮에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AI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밥그릇을 빼앗고 있다"고 열변을 토했던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위선자가 되어가고 있는가
며칠 전인 2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샌타바버라(UCSB)의 학보사 Daily Nexus에는 "AI가 우리 모두를 위선자로 만들고 있다"는 도발적인 칼럼이 실렸다. 필자인 이사벨라 레온은 스스로를 '생성형 AI 반대론자'로 규정하는 20대의 젊은 창작자다. 그는 AI가 윤리적으로 문제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틱톡에 뜬 AI 밈(Meme)에 웃음을 터뜨리고 급한 과제 앞에서 AI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Z세대의 이중성을 고백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장 최전선에서 기술을 마주하는 젊은 예술가의 이 고백을 읽으며, 나는 안도감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꼈다. 2026년 2월의 서울을 사는 현업 창작자인 나 또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SNS에서 'No AI Art' 배너를 공유하면서도, 업무 효율을 위해 코파일럿을 켜고, 시안 작업을 위해 미드저니의 구독료를 결제한다.
우리는 SNS에서 'No AI Art' 배너를 공유하면서도, 업무 효율을 위해 코파일럿(Copilot)을 켜고, 번역을 위해 챗GPT를 돌리며, 시안 작업을 위해 미드저니를 켠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게으름'이나 '도덕적 해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처한 생태계가 우리를 가속의 러닝머신 위로 밀어 올렸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는 이제 AI가 뽑아내는 속도와 퀄리티에 맞춰 결과물을 기대한다. "AI로 돌리면 금방 나오지 않나요?"라는 말은 이제 모욕이 아니라 일상적인 비즈니스 언어가 되었다. 이 속도전 안에서 '순수한 인간의 노동'만을 고집하는 것은 장인정신이 아니라, 곧 도태를 의미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생존이라는 이름의 합리화
Daily Nexus의 칼럼니스트는 지적한다. "AI 도구는 너무나 편리해서, 우리의 도덕적 저항감을 무력화시킨다." 맞다. 그것은 달콤한 독배다. 우리는 창작의 고통을 AI에게 외주 주고, 결과물만을 취한다. 과정이 생략된 결과물에서 우리는 과연 '나의 영혼'을 주장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오늘 밤도 변명을 준비한다. "이건 최종 결과물이 아니야. 레퍼런스일 뿐이야. 결국 리터칭은 내가 하잖아."
AI가 뱉어낸 이미지 위에 나는 다시 태블릿 펜을 댄다. 비 오는 거리의 질감을 뭉개고, 네온사인의 빛 번짐을 내 손으로 다시 그린다. 기계가 흉내 낸 감성에 나의 '진짜' 감성을 덧입히려 애쓴다. 그것은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밀키트에 집에서 기른 파를 송송 썰어 넣으며 "이건 내가 한 요리야"라고 위안하는 모습과 닮았다.
모순을 끌어안고 펜을 쥐다
유네스코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28년까지 전 세계 창작자들의 수입이 최대 24% 감소할 것이라 경고했다. 그 차가운 통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 안의 '창작의 불꽃'이 데이터의 조합으로 대체되는 것에 나 스스로 익숙해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펜을 쥔다. 위선자라는 꼬리표를 달고서라도, 나는 당장의 마감을 지켜야 하고 다음 달 월세를 내야 하는 생활인(生活人)이기 때문이다. 다만, 프롬프트 창을 닫고 포토샵의 브러시 툴을 선택하는 그 짧은 순간, 나는 다짐한다. 적어도 마지막 붓 터치 하나만큼은, 저 차가운 알고리즘이 흉내 낼 수 없는 나의 온기를 온전히 담아내겠노라고.
이것은 비겁한 타협일까, 아니면 디지털 대홍수 시대에 인간성을 지키려는 처절한 생존법일까.
오전 1시. 작업이 끝났다. 결과물은 완벽에 가깝게 아름답지만, 나는 어쩐지 조금 슬프다.
[편집자주: Pocus 시선을 시작하며]
기술의 발전은 매일 새로운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거대한 파도 위에서 노를 젓는 우리의 손에는 물집이 잡히고 있습니다. [Pocus 시선] 은 AI 시대라는 낯선 생태계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의 내밀한 고백이자 치열한 생존기입니다. 창작자도, 직장인도, 교사도, 그리고 그저 오늘을 살아내는 평범한 누군가도 — 각자의 자리에서 AI와 부딪히며 겪는 모순과 죄책감, 의심과 희망을 1인칭의 목소리로 가감 없이 전합니다. 숫자와 트렌드 뒤에 가려져 있던 '진짜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