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8문
Q. 28. Wherein consisteth Christ’s exaltation? A. Christ’s exaltation consisteth in his rising again from the dead on the third day, in ascending up into heaven, in sitting at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nd in coming to judge the world at the last day.
문 28.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과 하늘로 올라가신 것과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신 것과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입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4)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막 16:19)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3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인생은 흔히 곡선으로 비유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곡선은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가는 'U자형' 곡선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V자 반등'이라 부르며 침체된 경기가 급격히 회복되는 희망의 상징으로 여긴다. 앞선 제27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비참한 죽음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하강(낮아지심)'을 목격했다.
그러나 역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8문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반전인 그리스도의 '높아지심(Exaltatio, 승귀)'을 선포한다. 이는 단순한 명예 회복이 아니라, 깨어진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고 만물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우주적 승리의 서사다.
그리스도의 높아지심 그 첫 번째 단계는 '부활(Resurrectio)'이다. 인문학적으로 죽음은 모든 가능성의 종말이며 실존의 완전한 소멸을 뜻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다. 이는 생물학적 기적을 넘어, 엔트로피 법칙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생명의 역전성'이 존재함을 증명한 사건이다. 부활은 인간이 가진 가장 깊은 공포인 죽음에 대한 승리를 의미하며,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궁극적인 희망의 근거가 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과거의 상처와 실패라는 무덤에 갇혀 있는 현대인들에게, 죽음조차 정복하신 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두 번째 단계는 '승천(Ascensio)'이다. 지상에서의 사역을 마치신 그리스도가 하늘로 올라가신 사건은, 그분이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유한한 존재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는 무한한 통치자로 전환되셨음을 뜻한다. 이는 물리적으로는 차원의 이동이며, 정치적으로는 '왕의 귀환'이다. 그리스도는 패배하여 도망치듯 세상을 떠나신 것이 아니라, 승리자로서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로 복귀하셨다. 승천은 우리가 사는 이 가시적인 세계가 전부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문학적 상상력 너머의 확신으로 우리에게 제시한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통해 그분의 권위를 확립하신다.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 왕의 우편은 실질적인 통치권과 집행권을 행사하는 자리를 의미한다. 현대 비즈니스 용어로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우주라는 거대 기업의 실질적인 운영권(CEO)을 행사하고 계신 분이다. 그분은 보좌에 앉아 수수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만물을 보존하시며 교회를 다스리고 성도를 위해 중보하신다. 이는 우리에게 놀라운 심리적 안도감을 준다. 세상이 아무리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워 보여도, 결국 역사의 핸들을 쥐고 계신 분은 공의롭고 자애로운 우리의 구속주라는 사실 때문이다.
높아지심의 마지막 정점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Parousia)'이다. 현대인들은 '심판'이라는 단어에서 공포를 느끼곤 하지만, 인문학적 정의로 심판은 '왜곡된 것의 바로잡음'이며 '진실의 드러남'이다. 경제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투명한 '최종 감사(Final Audit)'와 같다. 억울한 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숨겨진 불의를 드러내며, 모든 존재에게 합당한 자리를 찾아주는 공의의 완성이다. 그리스도가 심판주로 오신다는 사실은 역사가 허무하게 흩어지는 파편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의미 있는 여정임을 보증한다. 리더십의 관점에서 볼 때, 마지막에 반드시 책임과 평가가 따른다는 사실은 현재의 삶을 더욱 성실하고 정의롭게 살아가게 만드는 윤리적 동기가 된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승귀(昇貴, 높아지심) 사역은 현대인들에게 '성공'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세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것을 성공이라 말하지만, 그리스도는 낮아짐을 통해 높아지셨고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으셨다. 이는 고난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진정한 영광은 십자가를 통과한 부활에 있다는 '역설의 경영학'을 보여준다. 승귀하신 그리스도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의 현재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으며, 너희의 수고는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다(롬 8:18, 고전 15:58)"고 말이다.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성도의 미래적 신분의 보증수표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가 높아지셨기에 그분의 몸인 우리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릴 소망을 갖게 된다. 부활의 생명으로 오늘을 견디고, 승천하신 주님의 통치를 신뢰하며, 보좌 우편의 중보를 힘입어, 다가올 공의로운 심판을 기쁨으로 기다리는 삶. 이것이 바로 소요리문답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승귀의 신학이다. 죽음의 무덤은 비어 있고, 하늘의 보좌는 가득 차 있다. 이 명백한 승리의 선언 앞에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성공을 향해 질주하지만, 정작 그 정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그 성공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는 모른다.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위치'보다 '기능'에 집중된 영광이다. 그분은 높아지셔서 우리를 다스리고 보호하며 변호하신다. 진정한 리더십의 승귀는 더 많은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책임을 지고 더 깊은 공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
당신이 지금 인생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U자형 곡선을 기억하라.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 보신 분이 당신의 손을 잡고 가장 높은 곳으로 함께 오르실 것이다.
허동보 목사 | 수현교회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