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여행하다 후지산(富士山) 인근 마을에 들른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낯선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선명한 초록과 파랑으로 빛나는 훼밀리마트와 하늘색 간판이 상징인 로손의 로고가 이곳에서는 갈색이나 짙은 녹색 등 차분한 색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브랜드인데도 색이 다르다 보니 처음 보는 이들은 “위조 매장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색의 변화는 상업적 전략이 아니라 ‘경관 보호’라는 공공적 가치에서 비롯됐다. 후지산 일대는 일본을 대표하는 상징적 자연유산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이다. 이에 따라 주변 지역은 엄격한 경관 보전 지침을 적용받는다. 건축물 높이뿐 아니라 외벽 색상, 간판 조명 밝기까지 세부적인 규제가 뒤따른다. 강렬한 원색이나 네온 조명은 자연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편의점 본사와 가맹점은 기존 브랜드 컬러 대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저채도 색상으로 간판을 제작한다. 초록과 파랑 대신 갈색, 베이지, 짙은 올리브톤이 사용되며, 조명도 은은하게 낮춘다. 멀리서 보면 지역 상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특유의 서체와 로고 디자인은 그대로 유지돼 브랜드 정체성은 지켜낸다. ‘눈에 띄는 간판’이 아니라 ‘눈에 거슬리지 않는 간판’을 선택한 셈이다.

이 같은 사례는 일본 전역의 역사·전통 보존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교토의 전통 거리에서는 패스트푸드점 간판조차 갈색이나 흑색 계열로 바뀌어 있다. 글로벌 기업도 지역의 문화적 맥락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색을 낮춘다. 상업적 상징보다 지역 경관이 우선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경관 민주주의’의 사례로 평가한다. 지역의 자연과 문화유산은 특정 기업의 광고판보다 오래 지속되어야 할 공공 자산이라는 인식이 제도와 관행 속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관광객의 시선을 끄는 화려함 대신, 오랜 시간 유지될 풍경을 택한 선택이 지역 브랜드 가치를 오히려 높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후지산을 찾는 방문객들은 차분한 거리 풍경에 대해 “정갈하다”, “풍경이 방해받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다. 기업 역시 브랜드 컬러를 잠시 내려놓는 대신, 자연을 존중하는 기업 이미지를 얻는다. 결과적으로 지역·기업·관광객 모두가 이익을 공유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후지산 인근에서 색이 바뀐 편의점 간판은 단순한 디자인 변형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상업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실험이자, 세계적 관광지의 품격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다. 화려함을 줄이고 조화를 택한 그 선택 속에서, 우리는 풍경을 대하는 한 나라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