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떡국과 송편에 담긴 철학
— 사라져가는 명절의 정신을 다시 배우다
‘명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쉬는 날’, ‘귀성길’, ‘세뱃돈’, ‘명절 스트레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단어의 뿌리를 더듬어 보면, 명절은 단순히 휴일이 아니라 하늘과 사람, 자연이 교감하던 날이었다.
주니어김영사에서 출간된 양태석 글, 김효진 그림의 『명절은 어떤 날일까요』는 어린이용 교양그림책이지만, 성인 독자에게도 잊고 있던 물음을 던진다. “명절은 왜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다.
이 책은 설날과 추석만이 아니라, 대보름, 단오, 칠석, 중양절 같은 전통 명절의 유래를 알기 쉽게 풀어내며, 각 명절마다 담긴 철학적 의미를 되짚는다. 단순한 풍습 소개를 넘어, ‘명절을 왜 지냈는가’라는 근본적 이유를 성찰하게 만든다.
책은 아이들을 위한 쉬운 문장으로 쓰였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가 깊숙이 숨어 있다. ‘명절’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마음의 의식이라는 사실이다.
『명절은 어떤 날일까요』는 교육용 책이지만, 어른에게는 잊혀진 전통에 대한 경고장이 된다. 저자는 “우리 조상에게 명절은 하늘에 복을 빌고,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가족의 안녕을 기도하는 날이었다”고 말한다.
이 한 문장 속에는 조상들의 공동체 중심의 삶의 철학이 녹아 있다. 명절은 개인의 행복보다 모두의 복을 비는 집단적 의식이었다. 단지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마을의 평화, 자연의 순환, 그리고 조상의 은혜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현대의 명절은 종종 ‘소비의 축제’로 변질됐다. 설에는 선물세트, 추석에는 귀향 전쟁이 뉴스의 주요 소재가 된다. 그러나 책 속의 명절은 절제와 나눔의 날이었다. 음식을 차리는 이유는 자신이 먹기 위함이 아니라, 조상과 이웃과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양태석 작가는 어린이들에게 “오늘은 어떤 날일까요?”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아이를 향하지만, 실은 어른들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우리는 과연 명절을 ‘의미 있는 날’로 기억하고 있을까?
명절의 상징이라면 단연 ‘떡국’과 ‘송편’이다. 이 두 가지 음식은 단순한 명절 음식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문화의 매개체’였다.
떡국은 “한 살을 더 먹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흰 떡은 깨끗한 마음과 새로운 시작을, 길게 썬 가래떡은 장수를 상징한다. 즉, 한 그릇의 떡국에는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성장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송편 역시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반달 모양의 송편은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을 상징한다. 꽉 찬 보름달이 아닌 초승달처럼, 아직은 미완이지만 내일을 향한 희망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음식의 상징은, 조상들이 ‘행위의 의미’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먹는 행위조차도 정신 수양의 일부로 여겼다.
책 속에는 이런 음식 외에도 각 명절의 놀이—강강술래, 줄다리기, 그네뛰기, 씨름—가 등장한다. 이 놀이들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의식 행위였다.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돌며 노래를 부르는 ‘강강술래’는, 공동체의 ‘원(圓)’을 상징했다.
책은 열두 달의 명절을 한 권에 담았다. 설날, 대보름, 삼짇날, 한식, 단오, 유두, 칠석, 백중, 추석, 중양절, 섣달그믐까지—우리 조상은 계절의 변화를 따라 명절을 지냈다.
이 명절들은 모두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삶을 연결하는 달력이었다. 봄에는 농사를 준비하고, 여름에는 더위를 이기며, 가을에는 풍년을 감사하고, 겨울에는 한 해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이 달력은 점점 사라졌다. 농사가 일상의 중심이 아니게 되면서 명절의 의미도 희미해졌다. 현대의 달력에는 설과 추석, 단 두 개의 명절만 공휴일로 남았다.
『명절은 어떤 날일까요』는 그 잊혀진 명절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낸다. ‘유두’, ‘백중’, ‘중양절’ 같은 생소한 단어들을 통해, 우리의 문화적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저자는 명절이 단순한 전통행사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약속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명절은 과거의 풍습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생활의 철학’이다.
오늘날의 명절은 변화를 맞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족 간의 만남은 줄었고, 온라인 세배나 비대면 제사 같은 새로운 형태가 생겼다.
이 변화는 명절의 본질을 훼손할까? 아니면 시대에 맞게 진화하는 과정일까? 『명절은 어떤 날일까요』는 후자에 무게를 둔다. 전통은 변하되, 정신은 남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명절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은, 단순히 ‘문화 교육’이 아니라 ‘정체성 교육’이다. 명절의 이야기를 배우며, 아이들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 뿌리를 잊지 않도록 만든다.
성인 독자에게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있던 ‘느림의 미학’을 상기시킨다. 명절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감사와 나눔을 배우는 시간이다.
명절의 본질은 의식도, 음식도 아니다. 그것은 결국 ‘마음’이다. 조상들은 떡국 한 그릇에도 철학을 담았고, 송편 한 입에도 소망을 새겼다. 그 마음이 사라질 때, 진정한 명절도 사라진다.
『명절은 어떤 날일까요』는 단순히 어린이용 지식책이 아니다. 이 책은 현대인에게 “너에게 명절은 어떤 날이니?”라는 물음을 던진다.
명절은 하늘과 땅, 조상과 후손, 이웃과 이웃을 잇는 다리였다. 세대 간의 단절이 심화된 지금, 우리는 이 다리를 다시 놓아야 한다.
떡국의 흰색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송편의 반달처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명절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전통을 알려주는 교재이자, 어른들에게는 잊힌 문화의 기억을 되살리는 거울이다.
명절이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사람을 잇는 날’임을 일깨워주는 이 작은 그림책은, 어쩌면 우리 시대 가장 깊은 철학서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