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의 시선으로 본 ‘부모됨’의 연습
— 김성진의 『엄마 사용법』 다시 읽기
“딩동! 주문하신 엄마가 도착했습니다.”
이 한 문장은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묘한 충격을 준다. 김성진의 장편동화 『엄마 사용법』(창비, 2012)은 ‘생명장난감 엄마’를 조립해 사용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단순한 동화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란 무엇인가”, “가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현수는 엄마가 없는 아이이다. 생일을 앞두고 그는 아빠에게 ‘엄마를 사 달라’고 조른다. 그리고 택배 상자 속에서 직접 조립한 ‘생명장난감 엄마’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 엄마는 냉장고를 정리하고 청소는 잘하지만, 아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엄마, 나 심심해.”
“지금 바빠. 청소해야 해.”
현수는 실망하고, 독자는 웃음을 멈춘다. 아이가 엄마를 가르치는 이 역전된 상황 속에서 작가는 ‘부모됨’이 선천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사랑은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배워야 하는 기술이며,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감정임을 이 동화는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현수는 ‘사용법 설명서’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자, 스스로 엄마에게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한다.
“아이를 안아주는 법”, “책을 읽어주는 법”, “같이 웃는 법”.
이 장면들은 단순히 유머러스하지 않다. 그것은 아이가 부모에게 ‘관계의 사용설명서’를 써 내려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김성진은 기가 막힌 장치를 마련한다.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부모의 역할’이 오히려 진짜다. 아이는 자신의 욕망을 명확히 알고 표현한다. 사랑받고 싶다고, 함께 놀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의 부모는 종종 그런 요청을 “투정”이나 “어리광”으로 받아들인다. 『엄마 사용법』은 그 오해를 정면으로 비튼다. 아이의 언어가야말로 사랑의 원형이라는 사실을, ‘생명장난감 엄마’라는 기계적 존재를 통해 아이러니하게 일깨운다.
이 과정에서 어른 독자는 묘한 감정의 전복을 경험한다. “아이의 시선으로 부모됨을 연습한다”는 이 작품의 진정한 힘이 여기 있다.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파란 사냥꾼’의 등장이다. 장난감 회사는 감정이 생긴 엄마를 ‘고장 난 제품’으로 간주하고 회수하려 한다.
이 장면은 현대 사회의 불편한 풍자를 담고 있다. 감정의 결함은 오히려 인간됨의 증거임에도, 세상은 효율을 이유로 그것을 폐기하려 한다.
김성진은 동화의 외피 속에 기술문명과 감정의 대립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숨겨 둔다. 사랑을 알고 아픔을 느끼는 순간, 엄마는 제품이 아닌 인간이 된다. 그때부터 엄마는 ‘사용법’이 아니라 ‘이해’와 ‘관계’의 언어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성인 독자는 이 대목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비효율”이라며 눌러왔는가.
아이에게, 배우자에게, 부모에게조차 “조립식 사랑”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엄마 사용법』의 마지막은 동화답게 따뜻하다. 엄마는 회수의 위기를 넘기고, 현수는 진짜 엄마와 다시 만난다. 그러나 이 결말이 주는 울림은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다.
현수와 엄마는 비로소 서로를 ‘배운 존재들’로 성장했다. 아이는 사랑을 요구하는 법을, 엄마는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익혔다. 이들의 관계는 완성형 가족이 아니라, 매일 조립되고 수정되는 ‘과정으로서의 가족’이다.
성인 독자에게 『엄마 사용법』은 단지 어린이 동화가 아니다.
그것은 부모로 살아가며 잊어버린 ‘처음의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거울이다.
가족이란 자동으로 주어지는 틀이 아니라,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만들어 가는 공동체라는 사실.
이 단순하지만 잊기 쉬운 진실이, 김성진의 작품 속에서는 아이의 목소리로 가장 순수하게 전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