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쓰마야끼에 스민 조선의 혼 –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의 400년의 불꽃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고통과 예술의 불꽃이 교차하는 곳에서 빛난다.
2020년 출간된 김양오 작가의 《도자기에 핀 눈물꽃 –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과 심수관 가 이야기》(빈빈책방)는 그 교차점에서 탄생한 한 권의 아름답고도 비통한 이야기다.
이 책은 단순히 ‘전쟁포로가 된 도공의 이야기’를 넘어, 전쟁이 빼앗은 인간의 삶과 그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예술혼을 담은 기록이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일본은 조선의 도공 수백 명을 납치해 갔다. 일본의 도자 문화 발전의 기틀이 된 이 참혹한 역사를 ‘도자기 전쟁’이라 부른다.
그 가운데 남원의 군인이자 도공으로 거듭난 인물 심당길(沈當吉)의 이야기가 중심에 놓인다. 일본 가고시마(옛 사쓰마)에 끌려간 그는 낯선 땅에서 흙을 만지며, 조선의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리고 그 불씨는 400년이 지난 지금, 그의 15대 후손 심수관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도자기에 핀 눈물꽃》은 이 긴 시간을 동화적 문체로 엮어, 어른에게는 역사적 성찰을, 청소년에게는 예술과 정체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1597년, 임진왜란의 두 번째 침략이었던 정유재란. 일본군은 조선의 우수한 기술자들을 체계적으로 납치했다. 무기보다도 더 탐냈던 것은 ‘흙을 빚는 손’, 즉 도자기 기술이었다.
심당길은 원래 도공이 아니었다. 그는 남원성을 지키던 군인이었고, 포로가 되어 끌려간 뒤 비로소 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사쓰마 번(藩)에 정착한 그는 조선에서 함께 끌려온 도공들에게서 기술을 배우며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에게 흙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었다. 조국을 잃은 포로의 손에서 흙은 그리움의 매개체이자 저항의 언어였다. 그가 만든 첫 번째 그릇에는 조선의 백자에서 배운 절제와 비움의 미학이 담겨 있었다.
책 속에서 김양오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릇 하나를 빚을 때마다, 심당길의 손끝에서는 조국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흙은 일본의 것이었으나, 혼은 조선의 것이었다.”
예술은 억압 속에서도 피어난다. 전쟁이 인간의 자유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혼의 자유까지는 지배할 수 없었다. 심당길의 도자기에는 그 불굴의 혼이 깃들어 있었다.
사쓰마현의 미야마 마을은 ‘조선인 마을’이라 불렸다. 그곳에서 도공들은 조선의 말로 대화했고, 조선식 결혼을 하며, 조선의 풍습을 지켰다.
그들에게 일본은 단순한 타국이 아니라 ‘그리움의 감옥’이었다. 그러나 그 감옥 안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예술로 증명했다.
심당길과 그의 동료 도공들이 만들어낸 사쓰마야끼(薩摩焼)는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 브랜드가 되었다. 그 표면의 미세한 균열무늬(크랙)은 마치 조선 도공들의 눈물자국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책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지 않는다. 작가는 마치 한 편의 서사시처럼, 낯선 땅에서 살아남은 도공들의 정신적 고향 만들기를 그린다.
그들의 마을은 ‘조선의 마지막 섬’이었고, 그들의 가마불은 꺼지지 않은 ‘조국의 불씨’였다.
“왜국의 흙 위에 피어난 것은 조선의 꽃이었다.”
이 한 문장은 이 책이 품은 핵심이다. 강제된 이주 속에서도 예술을 통해 민족의 혼을 지켜낸 사람들, 그들이 바로 조선 도공들이었다.
400년이 흘러도 그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현재 사쓰마 도자기의 맥을 잇고 있는 인물은 15대 심수관이다. 그는 일본의 국보급 도예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일본 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조선인의 피를 이은 도공”이라 말한다.
그의 공방 ‘심수관 도자기관’은 가고시마현 미야마 마을에 자리한다. 이곳은 단순한 예술공간이 아니라, 역사와 화해의 현장이다. 그는 도예를 통해 일본과 한국의 문화 교류를 이어가며, 조선 도공들의 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심수관은 1990년대 한국을 방문해 남원에서 열린 도자기 전시회에 참가했다. 그가 400년 만에 조국의 흙을 밟았을 때,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드디어 조상님들의 숨결을 느낍니다”였다.
《도자기에 핀 눈물꽃》은 바로 이 순간을 클라이맥스로 그린다. 심당길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조국의 흙, 그 흙에서 빚어진 도자기가 후손의 손을 통해 다시 조국으로 돌아온다. 그것은 시간을 건너온 귀향의 예술이다.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전쟁, 식민, 강제이주 등 한국 근대사의 아픈 뿌리를 예술의 언어로 되살린다.
특히 작가는 ‘기억의 윤리’를 강조한다. 도자기는 흙에서 태어나 불로 완성되지만, 기억이 없으면 단순한 그릇일 뿐이다. 조선 도공들의 도자기는 그 자체로 기억의 용기(容器)였다.
책의 후반부 ‘400년 만에 돌아오다’ 장에서는 도자기 한 점이 조국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것은 단순한 예술품의 귀환이 아니라,
“잊힌 이름들의 귀향이며, 망각을 거부한 역사적 복원”이다.
도자기 하나가 역사를 증언하고, 예술이 기억을 되살린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성인 독자에게 던지는 깊은 울림이다.
《도자기에 핀 눈물꽃》은 전쟁의 비극을 예술의 언어로 승화시킨 감동적인 기록이다.
심당길의 삶은 한 인간의 생애를 넘어, 민족의 예술혼이 어떻게 타국의 흙 위에서 다시 피어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수많은 예술인들에게,
심당길과 심수관의 이야기는 “예술은 기억이고, 기억은 생명이다”라는 진리를 일깨운다.
사쓰마야끼에 스민 조선의 혼은 아직도 타오르고 있다.
그 불꽃은 흙으로 빚어지고, 세대를 넘어 다시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400년의 세월을 건넌 그 불씨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혼이 있는 한,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