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는 생수의 비밀
요한복음 4장은 인간의 내면을 가장 섬세하게 비추는 복음의 한 장면이다. 예수는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지역을 지나며 한 여인을 만난다. 시간은 낮 12시, 태양이 가장 뜨겁게 내리쬐는 시간이었다. 다른 이들이 피한 그 시간에 한 여인은 조용히 물을 길러 나왔다. 그러나 그날, 그녀는 물보다 더 깊은 갈증을 채워줄 “생명의 말씀”을 만난다. 예수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4:14)고 선언하며, 육체의 목마름 너머에 존재하는 영혼의 갈증을 이야기했다.
우물가의 여인은 물을 기르러 왔지만, 예수는 그녀의 삶 깊숙한 상처를 꿰뚫어보셨다.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요 4:18)라는 말씀은 단지 그녀의 과거를 폭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 없는 삶의 공허함, 사랑과 인정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드러내는 대화였다. 오늘의 우리도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SNS의 ‘좋아요’를 통해 인정받고자 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목마르다.
그러나 그 갈증은 세상의 물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생수’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이는 성령을 상징한다. 예수께서 주시는 물은 죄로 인해 메마른 인간의 내면을 소생시키는 은혜의 강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는 말씀은,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서 끊임없이 생명을 공급하신다는 약속이다.
오늘의 신앙인에게 이 말씀은, 외적 조건이나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참된 만족의 근원임을 일깨워 준다.
사마리아 여인은 처음엔 예수를 “유대인 남자”로만 보았다. 그러나 대화가 이어질수록 그는 “선지자”,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도”로 인식한다. 이 변화는 신앙의 여정을 상징한다.
예수와의 진실한 대화는 단순한 종교적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방향을 바꾸는 만남이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고 외쳤다. 한 개인의 회심이 공동체의 복음 전파로 이어진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물질과 관계, 성공과 인정이라는 우물가에서 끊임없이 물을 길어 올린다. 그러나 그 물은 금세 마르고, 다시 목마르게 만든다. 예수께서 주시는 생수는 다르다.
그것은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즉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오는 내적 평화이다.
요한복음 4장은 단순한 역사적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초청이다.
“너는 내가 주는 물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 말씀은 오늘도 메마른 영혼에게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의 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