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정보 탐색과 판단의 주요 경로로 자리 잡으면서, 한 국가가 어떤 모습으로 이해되는가는 점점 인간이 아니라 AI가 생성하는 설명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외교, 투자, 연구, 정책 분석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 질의응답은 단순 참고를 넘어 사실상 전제 조건으로 작동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 변화 속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지식 주권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지식 주권은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고 관리하는가의 문제로 이해됐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데이터의 소유보다, 어떤 설명이 기준으로 사용되는가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정보를 갖고 있는가보다 그 정보가 어떻게 요약되고 해석되는가가 중요해진 것이다.
현재 글로벌 AI 환경에서 사용되는 주요 대형언어모델(LLM)은 대부분 특정 국가와 언어권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이 모델들은 방대한 자료를 학습하지만, 각 국가의 제도·행정·문화적 맥락을 동일한 밀도로 이해하지는 않는다. 특히 비영어권 국가의 정보는 번역과 요약, 재인용 과정을 거치며 점차 단순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자연스럽고 중립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AI가 생성하는 설명은 대체로 단정적이지 않고 균형 잡힌 문체를 띠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이를 객관적 정보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 결과 특정 국가에 대한 이해가 실제와 다르더라도, 그 차이는 쉽게 인식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지식이 왜곡되었다기보다, 설명 권한이 외부에 놓여 있는 상태로 볼 수 있다. 즉, 어떤 나라가 스스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이 정리한 설명이 사실상 기준으로 작동하는 구조다. 이는 전통적인 의미의 정보 통제나 검열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국 역시 방대한 공공 데이터와 정책 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꾸준히 개방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들은 대부분 사람을 위한 원문 문서 형태로 제공된다. 반면 AI는 원문을 직접 인용하기보다, 여러 출처를 종합해 하나의 설명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스스로 정리해 제공한 설명 체계가 충분하지 않다면, 외부에서 재구성된 설명이 기준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정부가 한국산 대형언어모델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배경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기술 주권과 데이터 자립은 분명 중요한 과제다. 다만 모델의 국산화가 곧바로 지식 주권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AI는 개발 주체보다 학습 구조와 참고 기준에 따라 작동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식 주권의 핵심은 “누가 AI를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AI가 무엇을 기준으로 설명하고 있는가에 있다. 자국의 제도와 정책, 사회적 맥락이 AI가 참고할 수 있는 형태로 구조화돼 있지 않다면, 외국산 AI든 한국산 AI든 유사한 한계를 가질 수 있다.
AI 시대의 지식 주권은 통제의 문제가 아니라 선제적 제공의 문제에 가깝다. 어떤 설명을 먼저, 어떤 구조로 제공하느냐에 따라 국가에 대한 인식의 기준이 형성된다. 기준이 없는 상태는 중립이 아니라 공백이며, 그 공백은 자연스럽게 다른 설명으로 채워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AI가 이해하고 재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식 주권은 더 이상 국경 안에만 머무는 개념이 아니다. AI가 국경을 넘어 설명을 생성하는 시대에, 지식 주권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점검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