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트 경력은 왜 이력서의 무기가 되지 못했는가
공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이들의 퇴직 이후는 종종 조용하다. 언론과 사회는 그들을 ‘엘리트 관료’라 부르지만, 정작 시장은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정책을 설계하고 예산을 조정했으며, 복잡한 이해관계를 중재해 온 경력은 왜 민간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개인의 역량을 의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직 경험이 개인에게 어떤 능력을 남겼는지, 그리고 그 능력이 왜 시장의 언어로 설명되지 못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문제는 공직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직 경험이 작동해 온 세계와 시장이 작동하는 세계가 너무 달라졌다는 데 있다.
안정의 시스템과 경쟁의 시장, 다른 규칙에서 생긴 간극
공직 조직은 역사적으로 안정과 통제를 핵심 가치로 삼아 왔다. 행정국가는 예측 가능성을 통해 신뢰를 유지해야 했고, 개인의 판단보다 제도의 일관성이 우선됐다. 정책은 충분한 검토와 합의를 거쳐야 했고, 실패는 개인의 학습이 아니라 조직의 책임으로 기록됐다. 이는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합리적인 설계였다.
반면 시장은 전혀 다른 궤적을 따라 발전했다. 글로벌 경쟁, 기술 혁신, 자본 이동이 가속화되면서 기업은 속도와 성과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의사결정의 정당성보다 결과가 먼저 평가받았고, 실패는 비용이지만 동시에 다음 기회를 위한 자산으로 간주됐다.
이 두 시스템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졌다. 공직은 여전히 절차와 책임을 중심으로 진화했지만, 시장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실험과 성과 경쟁을 강화했다. 그 결과 공직 경험은 ‘안정의 시스템’ 안에서는 고급 역량이었지만, ‘경쟁의 시장’에서는 바로 해석되지 않는 경력이 됐다. 이 간극이 공직 경험을 무력하게 보이게 만드는 구조적 배경이다.
공직자는 역량을 말하고, 시장은 결과를 묻는다
공직자 스스로는 자신의 경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정책을 기획했고, 수백억 원의 예산을 관리했으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현안을 조정했다. 이는 분명 고도의 문제 해결 경험이다. 그러나 시장은 질문을 다르게 던진다. 그 정책으로 무엇이 달라졌는가, 예산 집행의 결과는 무엇인가, 측정 가능한 변화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여기서 인식의 충돌이 발생한다. 공직 경험은 집단 성과로 축적되고 개인의 기여는 흐릿해진다. 반면 시장은 개인의 성취를 수치와 사례로 요구한다. 같은 경험이 공직 내부에서는 ‘당연한 업무 수행’으로 인식되지만, 시장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경력’으로 남는다.
채용 담당자의 시선에서도 공직 경력은 해석하기 어렵다. 직급과 연차는 명확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역량이 축적됐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공직 경험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번역되지 않아서 평가 절하된다.
제도·문화·인식이 겹쳐 만든 보이지 않는 장벽
공직 경험이 시장에서 힘을 잃는 이유는 단일하지 않다. 첫째는 제도의 장벽이다. 공직의 성과 지표는 과정과 책임에 맞춰 설계돼 있어 민간의 KPI(매출·성과 중심의 평가 기준)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둘째는 문화의 장벽이다.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조직 문화는 시장에서 ‘도전 회피’로 오해된다. 셋째는 인식의 장벽이다. 공직 경력은 여전히 ‘특수한 세계의 경험’으로 분리돼 인식된다.
이 세 장벽은 서로를 강화한다. 제도가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인식을 굳힌다. 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쌓아도, 이 구조 안에서는 그 가치가 충분히 드러나기 어렵다. 그래서 공직 경험의 문제는 개인의 재능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경력 해석 방식의 문제다.

공직 경험은 사라지는가, 번역될 것인가
공직 경험은 사라지는 자산이 아니다. 다만 아직 시장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을 뿐이다. 정책 성과를 문제 해결 사례로 재구성하고, 절차 중심의 경험을 결과 중심의 이야기로 전환할 때 공직 경험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동시에 시장 역시 변화해야 한다. 규제, 공공 협력, ESG와 같은 영역에서 공직 경험은 점점 더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공공과 민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에, 두 세계를 모두 이해한 경험은 오히려 희소한 경쟁력이 된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공직 경험을 과거의 안정 경력으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복합 역량으로 재해석할 것인가. 그 선택에 따라 공직 경험의 운명도 달라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