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실 이후의 삶은 어떻게 다시 ‘익어’ 가는가
『스파게티 신드롬』, 청소년소설의 외피를 쓴 성인 독자를 위한 성장 서사
프랑스 작가 마리 바레이유의 장편소설 스파게티 신드롬은 흔히 청소년소설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다루는 핵심 정서는 나이나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상실, 되돌릴 수 없는 운명, 그리고 ‘계획된 인생’이 한순간에 무너진 이후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오히려 성인 독자에게 더 깊게 파고든다. 2022년 프랑스 앵코륍티블상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이 한국에서 바람의아이들을 통해 출간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인공 레아는 엘리트 사립 고등학교에서 남자 농구팀 주전으로 활약하는 재능 있는 선수다. 농구 코치인 아버지와 함께 미국 여자 프로농구 리그 진출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레아에게 농구는 꿈이자 정체성이고, 아버지는 삶의 중심축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레아 자신 역시 유전 질환인 마르팡 증후군 진단을 받으면서 모든 것이 동시에 무너진다. 더 이상 농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단순한 진로 변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경험’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스파게티 신드롬』은 스포츠소설의 문법을 벗어난다. 승패나 성취의 서사가 아니라, 상실 이후 인간이 겪는 심리적 단계—충격, 부정, 분노, 타협, 수용—를 농구 경기의 쿼터 구조에 빗대어 촘촘히 그려낸다. 이는 애도의 과정을 지나온 성인 독자에게 낯설지 않은 감정의 지도다.
레아는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의 질병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다. 약을 버리고, 무덤을 찾지 않으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상을 연기한다. 가족과 친구의 손길은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 회피의 태도는 청소년 특유의 미성숙함이라기보다, 많은 성인이 선택해 온 방식과 닮아 있다. 상실을 직면하는 대신 정상성을 가장하는 태도 말이다.
소설은 이 ‘가짜 삶’이 얼마나 쉽게 균열되는지를 보여준다. 레아가 몰래 합류한 길거리 농구팀, 새로운 사랑 안토니와의 관계는 잠시 숨을 돌리게 하지만, 진실을 숨긴 관계는 결국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품은 차분하게 증명한다.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할머니의 말에서 나온다.
“스파게티는 익으라고 있는 거야. 섞이고, 부서지고, 어떤 때는 망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맛이 있지.”
가지런히 정렬된 마른 면은 안전하지만 지루하다. 삶은 오히려 냄비 속에서 뒤엉키고 형태를 잃을 때 비로소 자기 맛을 낸다.
이 은유는 성인 독자에게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계획이 무너진 뒤의 삶, 플랜 A가 사라진 이후의 세계는 실패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시작일 수 있다는 메시지다. 레아가 선택하는 것은 ‘차선책’이 아니라, 새로운 플랜 A다.
『스파게티 신드롬』은 농구, 질병, 로맨스라는 장르적 요소를 품고 있지만, 그 핵심은 상실 이후의 삶을 다시 조직하는 인간의 이야기다.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거나, 직업적 정체성이 흔들린 적이 있거나, 더 이상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독자라면 이 소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말한다. 삶은 직선이 아니며, 무너진 이후에도 계속된다고. 그리고 그 과정은 엉망진창일 수 있지만, 대체로는 살아볼 만하다고. 청소년소설이라는 서가에 놓여 있지만, 이 책이 진짜 도착하는 곳은 성인의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