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랑이를 사랑하는 법” —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철학적 그림책
“호랑이를 사랑하는 법”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독자는 잠시 멈칫하게 된다.
호랑이를 사랑한다고? 어떻게?
총으로 쏘지 않으면, 가두지 않으면, 보호하지 않으면 그것이 사랑일까?
이 질문은 단순히 동물애호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는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라는 오래된 철학적 문제가 숨어 있다.
자연을 선하다고 믿는 사람은 스스로를 그 일부로 느끼지만, 자연을 위협이나 대상화된 존재로 보는 사람은 그것을 통제하거나 정복하려 든다.
다비드 칼리는 인도의 속담 “자연은 호랑이와 같다”에서 출발해,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을 이야기한다.
총을 쏘는 사람, 가두는 사람, 보호하려는 사람, 그리고 그냥 두는 사람.
이 네 가지 태도는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의 축약이며, 동시에 우리가 자신과 맺는 관계의 은유다.
즉, 이 책은 ‘호랑이’를 말하지만, 실은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류는 오랜 세월 자연을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할수록 자연은 대상화되었다.
‘정복’, ‘개발’, ‘관리’라는 이름으로 자연은 분절되고, 수치화되고, 소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호랑이를 사랑하는 법』의 그림 속에서, 호랑이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철창 안에 갇히기도 하고, 박제되어 벽에 걸리기도 하며, 인간의 손에 길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가브리엘 피노의 붓은 호랑이의 존재를 단순한 동물이 아닌, 존엄한 생명으로 그려낸다.
그 눈은 말한다.
“너는 나를 가두었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보고 있다.”
이 장면은 마치 현대 문명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자연을 통제하려 들지만, 결국 그 통제의 결과는 우리 자신을 옭아매는 굴레가 된다.
기후 위기, 생태 파괴, 팬데믹은 그 반증이다.
자연을 억압한 문명은, 스스로의 생존 기반을 흔들고 있다.
이 그림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 문화적 배경에 있다.
작가 다비드 칼리는 인도의 속담에서 영감을 얻었다.
“자연은 호랑이와 같다. 그를 건드리지 말라.”
이 간결한 말에는 동양적 자연관의 핵심이 담겨 있다 — 자연은 인간이 통제하거나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생명이라는 생각이다.
이탈리아의 화가 가브리엘 피노는 이 사상을 유럽적 미학으로 번역했다.
그의 그림에는 선과 색채의 절제가 있다.
호랑이의 주황빛 몸은 강렬하지만, 그 주변의 배경은 여백이 많다.
이는 인간과 자연의 긴장과 조화를 동시에 드러낸다.
두 예술가의 만남은, 동서양을 잇는 생태철학의 다리다.
이 책은 어린이 그림책의 형식을 취하지만, 내용은 철저히 ‘성인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가깝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가 없다면, 이 책의 진짜 의미는 보이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말한다.
“호랑이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시적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윤리적 명제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속한 세계를 부정하는 일이다.
호랑이를 보호하는 일은 단지 멸종 위기종을 지키는 행동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작가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가 자연을 존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인간이 만든 문명은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분리시켰다.
『호랑이를 사랑하는 법』은 그 단절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이 책은 말없이 묻는다.
“당신은 호랑이를 사랑하나요, 아니면 당신이 만든 ‘안전한 세계’를 사랑하나요?”
『호랑이를 사랑하는 법』은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의 형태를 빌려, 성인에게 철학적 자성을 촉구한다.
이 책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간의 오만함을 고발하고, ‘공존’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운다.
자연은 인간의 외부가 아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숨 쉬며,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호랑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자연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길.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사랑의 법”이다.
이 그림책을 덮는 순간, 독자는 깨닫게 된다.
우리가 호랑이를 잃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 자신을 잃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시대의 진정한 용기는, 자연을 건드리지 않는 용기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