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
예수의 첫 표적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요한복음 2장 1절부터 12절은 예수의 공생애 첫 표적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한 마을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위기 상황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기쁨의 상징이 사라지는 사건이었다. 잔치에서 포도주는 축복과 환희의 상징이었기에, 포도주의 결핍은 곧 기쁨의 결핍을 의미했다. 그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께 상황을 알리고, 예수는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요 2:4)라고 말씀했다. 그러나 그 말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이 이미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예수의 첫 기적은 화려한 무대가 아닌, 평범한 잔치의 결핍 속에서 드러났다. 하나님의 일은 종종 우리의 부족함 속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자리에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법이다.
예수께서는 잔치의 하인들에게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게 했다. 이 항아리는 유대인의 정결 예식에 쓰이는 것으로, 의식적 정결을 상징하는 그릇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 항아리를 새롭게 사용하셨다. 정결의 물은 예수의 손을 통해 기쁨의 포도주로 바뀌었다.
이 사건은 율법에서 은혜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이전의 정결 의식이 인간의 노력과 형식에 머물렀다면, 예수의 표적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새 생명이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예수의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대한 선언이었다. 인간의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먼저임을 알려주는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무엇이든지 그가 너희에게 시키는 대로 하라”라고 말한다. 이 짧은 한 문장이야말로 믿음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때로 침묵하실지라도, 순종하는 자를 통해 기적을 완성하신다.
하인들은 예수의 말씀대로 항아리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연회장에 물을 떠다 주었을 때, 그 물은 이미 최고의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
이 장면은 순종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순종은 결과를 알지 못한 채 따르는 행위다. 하인들은 물이 포도주로 변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다.
기적은 바로 그 순종 위에 세워졌다. 믿음은 이해보다 앞서며, 순종은 계산보다 깊다. 예수의 첫 표적은 순종이 불러온 은혜의 결실이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순종하는 마음을 통해 일하신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믿음으로 움직일 때, 우리의 평범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경험이 일어난다.
이 사건 후에 제자들은 예수를 믿었다. 믿음은 표적의 목적이었고, 그 표적은 믿음의 출발이었다.
오늘 우리는 여전히 삶의 ‘포도주가 떨어진 순간’을 경험한다. 관계의 결핍, 재정의 한계, 마음의 공허함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신다.
“무엇이든지 그가 너희에게 시키는 대로 하라.”
이 한 문장은 시대를 넘어 믿음의 원리를 압축한다. 순종은 언제나 기적의 문을 연다.
예수의 첫 표적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믿음의 항아리 속에서 새로운 포도주의 은혜가 흘러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