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과 바람과 별의 길을 걷다”
『윤동주 문학지도, 걸어가야겠다』가 보여주는 유토피아의 시학
윤동주는 한 시인의 이름을 넘어, 한 세기의 고통을 증언하는 존재다. 『윤동주 문학지도, 걸어가야겠다』는 그 이름을 단지 문학사 속의 기호로 남기지 않는다. 김응교는 윤동주가 살아가고, 걷고, 바라보았던 구체적 공간들을 ‘문학의 현장’으로 복원한다.
그의 여정은 함경도 정주에서 시작해 평양, 경성, 그리고 일본의 다카다노바바로 이어진다. 이 책은 각 공간을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기억의 저장소’로 해석한다. 시인이 겪은 풍경과 현실의 불화, 그리고 그 불화 속에서 피어난 시의 기원을 탐구한다.
그는 공간의 감각을 통해 윤동주의 내면을 읽는다. 금강산의 기암절벽에서 탄생한 시 「비로봉」, 조선인 노동자들과 함께했던 아현리역의 기억, 하숙집 육첩방에서의 고독까지 — 모든 장소가 한 편의 시가 된다.
윤동주의 글쓰기는 단순한 사유의 결과가 아니다. 김응교는 이를 “신체적 글쓰기(corporeal writing)”라 부른다. 시인은 고통을 관찰하지 않고, 그 고통을 스스로의 몸으로 겪는다.
산문 「화원에 꽃이 핀다」에서 윤동주는 “문장 한 행을 쓰는 데 1년이 걸린다”고 고백했다. 봄에는 고민으로 짜들고, 여름에는 권태에 시들며, 가을에는 울고, 겨울에는 사색하며 그제야 한 줄을 얻는다.
그의 시는 피와 세포로 쓴 기록이다. 「병원」의 “나도 모르는 아픔”은 단지 신체의 통증이 아니라, 시대와 민족의 상처를 온몸으로 감내한 시인의 자기 고백이다. 『윤동주 문학지도, 걸어가야겠다』는 바로 이 ‘몸의 글쓰기’를 통해 시인의 인간적 깊이를 복원한다.
윤동주의 시는 저항의 언어였다. 일제강점기, 한글은 금지된 언어였다. 그러나 윤동주는 자신의 시를 오롯이 모국어로 썼다.
그는 시집을 내는 행위를 ‘살아남은 언어의 봉헌’이라 여겼다. 19편의 시를 다듬어 시집을 내고자 했던 그의 의지는 단순한 예술 행위가 아니라, ‘죽어 가는 한글’을 지켜내는 실천이었다.
김응교는 이 책에서 언어를 통한 저항의 의미를 복원한다. 윤동주가 “금지된 시대에 균열을 일으킨” 것은 펜 한 자루였다. 그의 문장은 폭탄보다 강한 언어의 무기였다.
윤동주의 시에서 ‘하늘’은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하늘은 비교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는다. “하늘 다리 놓였다. 알롱달롱 무지개 노래하자, 즐겁게.”라는 구절처럼, 하늘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기쁨의 다리다.
그의 ‘푸른 하늘’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윤동주의 유토피아적 상상이다.
김응교는 『윤동주 문학지도, 걸어가야겠다』를 통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결국 ‘인간의 존엄’을 향한 길임을 보여준다.
시인은 ‘하늘 아래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낮추며, 그 하늘 아래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의 고통을 끌어안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여전히 푸르다.
윤동주를 읽는다는 것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일이다. 김응교의 『윤동주 문학지도, 걸어가야겠다』는 그 길 위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단어 — ‘인간’, ‘언어’, ‘존엄’을 되살린다.
시인은 80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건다.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그 조용한 흐름은 시대를 넘어, 오늘 우리의 발걸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