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기록과 해석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다. 최근 온라인상의 한 역사 콘텐츠는 그간 주류 학계에서 위서로 치부되어 온 환단고기, 그중에서도 고려 시대 행촌 이암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단군세기의 사료적 가치를 재조명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해당 영상은 단순히 감성적인 민족주의에 호소하기보다, 제도권 내의 권위 있는 연구자가 남긴 저술을 근거로 제시하며 논의의 성격을 학술적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시도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 고대사 연구가 직면한 자료의 부족이라는 해묵은 과제와 맞물려 있다. 기존 교육 현장과 학계가 확립해 온 서술 체계가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것에 대해, 온라인 발언자들은 새로운 가설과 문헌 해석을 통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본 기사는 특정 해석을 정답으로 제시하기보다, 기존 학계가 충분히 답하지 못한 질문이 존재함을 소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단군세기’의 문헌적 원형과 계승에 대한 주장
핵심 논점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가 후대의 전면적인 창작물이 아니라, 고려 말의 문신 행촌 이암이 쓴 ‘모본(母本)’을 바탕으로 전승된 기록이라는 점이다. 발언자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를 역임한 한 석학의 연구를 인용하며, 행촌 이암의 생애와 사상적 궤적 속에 고대사를 자주적으로 서술할 만한 충분한 배경이 존재했음을 강조했다.
영상에 따르면, ‘단군세기’는 단군왕검 1세부터 마지막 47세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신화적 존재로서의 단군이 아닌 통치자로서의 단군 계보를 구체화한 것이다. 주장 제시자는 이 책이 대일 항쟁기를 거쳐 현대에 공개되는 과정에서 일부 용어나 표현이 윤색되었을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뿌리가 되는 역사적 사실관계와 원형은 보존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반면, 기존 학계와 교육계의 입장은 신중하다. 기록의 출처와 전승 과정이 불분명한 사료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두 관점이 충돌하는 지점이 단순한 ‘진위 판정’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발언자가 주목한 지점은 조선 시대 성리학적 사대주의와 관찬 사서 위주의 기록 보존 방식에 의해 수많은 고대 사서들이 소실되거나 은폐되었을 가능성이다. 실록에 기록된 ‘조요서(妖書)’ 수거령 등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이는 기존 학계가 강조하는 ‘현존하는 문헌의 실증’이라는 원칙과 ‘소실된 기록의 복원과 전승’이라는 가설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오늘날 고대사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온라인을 통해 표출되는 현상은, 우리가 배운 역사가 고대사의 실체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서 비롯된다. 비록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나, 이를 단순한 허구로 치부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지향점과 전승의 맥락을 학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특정 문헌의 주장을 비판 없이 수용하거나, 반대로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 모두 역사 연구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당시의 학술·정책 환경 속에서 형성된 연구 체계가 지닌 한계와 성과를 동시에 직시하되, 새롭게 제기된 질문들을 학술적 검증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요구된다. 역사의 빈틈을 채우는 것은 단정적인 결론이 아니라, 더 나은 증거를 향한 끈질긴 추적과 열린 토론이기 때문이다.
- * 참고 자료
[영상] 서울대 국사학과 한영우 교수가 밝힌 [환단고기] 진서론
- 최명희 박사 (https://youtu.be/z4worviOZn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