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역사] 22. 아지(按司)의 등장, 농경 사회와 류큐 권력 구조의 시작

조개 무덤 시대의 종말과 농경 사회로의 전환

경제력·무력·구스쿠 축조로 성장한 지역 실력자

삼산 시대와 류큐 왕국 형성의 기반

우루마시에 있는 이하구스크ⓒ오키나와현립박물관

 

 

아지(按司)는 오키나와 역사에서 구스크 시대(グスク時代, 12세기~16세기경)에 출현한 지방의 유력자이자 지배 계층을 지칭한다. 이들의 등장은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수렵·채집 중심의 조개 무덤 시대(貝塚時代)가 끝나고, 벼농사와 밭농사를 기반으로 한 농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근본적인 사회 변화의 산물이었다.

 

약 7,000년 동안 이어졌던 조개 무덤 시대에는 수렵·채집·어로가 생활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12세기경 농경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해안에서 내륙 언덕으로 생활 거점을 옮겼다. 정주 생활이 가능해지고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자 인구가 증가했고, 식량 관리와 역할 분담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마을을 이끄는 카시라(かしら,수장)가 등장했다. 카시라는 식량 관리뿐만 아니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まつり, 마쓰리)를 주관하고, 신과 사람을 연결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점차 권력을 축적한 카시라는 마을 지배자로 성장했고, 오키나와에서는 이들을 아지라 불렀다. 초기 류큐 왕조의 시조로 알려진 슌탱(舜天)과 에이소(英祖) 또한 이 시기의 아지였을 가능성이 크다.

 

아지들이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기반은 농업 생산력과 교역이었다. 농경으로 얻은 잉여 생산물은 재산이 되었고, 해외 교역을 통해 부가 확대됐다.

 

구스크 시대는 일본 본토와 중국, 동남아시아와 활발히 교류하던 시기로, 도자기와 철기 등 다양한 문물이 유입됐다. 출토된 중국 자기, 철제품, 탄화된 곡물은 아지들이 단순한 촌락 수장이 아니라 국제 교류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키나와는 아시아 무역의 거점으로 성장했으며, 이미 11세기경에는 일본 본토에 야코가이(ヤコウガイ, 야광조개) 제품을 대량 수출하는 조개의 길(貝の道) 교역망이 존재했다. 이를 통해 아지들은 중국 화폐인 개원통보(開元通宝)와 철기를 확보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아지들은 무력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했다.

마을 간 갈등이 심화되자 아지들은 언덕 위에 거점을 세우고 돌담으로 둘러싼 요새인 구스크를 축조했다. 구스크를 중심으로 주변 마을을 흡수하며 세력을 키워 소규모 국가로 발전했다. 아지들의 충돌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이러한 경쟁과 통합 과정을 통해 14세기 초에는 북산·중산·남산 왕국으로 나뉘는 삼산 시대(三山時代)가 도래했다.

 

아지의 출현은 오키나와 사회가 원시적 공동체를 넘어 농경 기반의 계급 사회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농업 생산력, 교역, 군사력, 구스크 축조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고, 이들의 경쟁과 연합은 결국 류큐 왕국 성립의 기틀이 되었다.


 

아지는 농경 사회의 성립과 함께 등장한 지역 권력자로, 농업과 교역, 군사력을 바탕으로 오키나와 사회를 변화시켰다. 그들의 경쟁과 통합 과정은 삼산 시대를 거쳐 류큐 왕국 탄생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오키나와 역사 이해에 있어 핵심적인 과정으로 평가된다.

 

 

 

작성 2025.09.29 14:19 수정 2025.09.2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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