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질문

이동용 (수필가/철학자)



지금까지 써오던 노트가 마지막 공간까지 나에게 내주고 말았습니다. 


그 마지막 노트의 첫 페이지로 되돌아가 보았습니다. “2023년 9월 17일. 추석이 다음주. 아직도 무덥다. 아직도 모기가 남아 있다.” 


이 말을 새로운 노트의 첫 페이지에 적고 나서 이 년이 지난 지금의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2025년 9월 26일. 추석이 이 주 후.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조용히.”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작가 한강이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에 적어놓았던 질문입니다. 


끝도 없이 빨려 들어가는 심연, 바닥이 없는 무대,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흑암, 질문의 끝을 형성하는 물음표의 갈고리가 나의 아가리를 낚아채도록 조용히 나를 방치했습니다. 


질문이 이끄는 대로 가보려 했습니다.


발버둥 치면 나만 손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그저 질문에 입을 허락하고 침묵을 지키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식이 올 때까지 두 개의 질문을 기억했습니다. 볕이 들 때까지 질문을 고수했습니다. 생각하는 존재는 생각으로 자신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러다가 독서는 한강이 벼락처럼 얻은 깨달음에 이르렀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빛과 실 속에 진하게 새겨진 나이테 같았습니다. 이렇게 주어와 목적어를 뒤집어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한 것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다. 순간, 작가는 ‘생명의 빛’을 보았습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둘 다 맞습니다. 


둘이 서로의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빛의 출현을 도왔습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둘 다 중요한 의미를 담아냅니다. 시간과 공간이 변했고, 무게의 중심이 옮겨졌을 뿐입니다. 질문의 주체가 수면 위로 부상했습니다.


과거가 상처를 입었고 위기에 처했습니다. 지나간 시간이 치명적인 병에 걸렸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 아이처럼 그렇게 과거는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도 나의 것이라는 사실이, 그것은 지나갔어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인식되었습니다. 


자신은 자기에게 손을 뻗어야 합니다. 손을 잡으면 사력을 다해 끌어주어야 합니다. 수면 위로 떠오를 때까지 힘으로 버텨주어야 합니다. 시간 속의 과거를 구해야 합니다.


과거의 존재론,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책임지고 보살펴야 할 개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폭력적인 동시에 희생적입니다. 


인류는 언제나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방황을 거듭합니다. 


죽으면 그만이다, 죽으면 끝이다, 라고들 말합니다. 한강은 정반대의 말을 떠올립니다. 한강이 치열하게 고민했던 문제입니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현재를 구할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물음표의 날카로운 갈고리에 아가리를 맡기고서 보내는 시간은 쉽지 않습니다.


양파의 껍질은 양파 안에서 형성됩니다. 모든 잉태가 내부에서 시작되듯이, 껍질은 안에서 생겨납니다. 바깥이 내면에서, 속에서, 안에서 형성되어 시간 속에 머뭅니다. 


질문이 존재의 껍질을 형성합니다. 질문이 품은 의미만큼 자신을 감싼 세상의 크기가 형성됩니다. 


세계관, 인생관이 커질수록 그 안의 존재 또한 그 질문에 걸맞은 모습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매번 두 번째 질문에서는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개념이 충돌합니다. 서로가 힘겨루기를 하며 절대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삶이 죽음을 구할 수 있는가? 죽음이 삶을 구할 수 있는가? 


돌고 도는 생철학적 질문입니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자, 구세주가 될 수 있는가? 


대답은 기다려야 합니다. 함부로 입을 떼려 하면 아가리가 찢어질 수 있습니다.

작성 2025.09.29 10:49 수정 2025.09.2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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