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면 이상한 사람" ... 음주 문화의 지각변동
한국인이 술을 끊고 있다.
한때 회식과 모임 중심으로 성장했던 주류 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가계의 술 소비가 10분기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한 경기 침체의 반사 효과가 아니다. 음주를 기호(嗜好)의 영역으로 재정의하는 구조적 변화가 한국 사회 저변에서 진행 중이다.
올해 1분기 주류의 명목 소비지출은 작년 동기 대비 7.5% 감소해 8분기째 내리 줄었다. 물가 상승분을 제거한 실질 기준으로는 낙폭이 더 크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주류 실질 소비지출은 약 1만3,000원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9.0% 줄어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큰 폭의 감소로 기록됐다.
중장기 추세는 더욱 극적이다. 국내 주류 출고량이 10년 새 17% 넘게 쪼그라들었다. 2024년 국내 주류 출고량은 315만1,000㎘로, 2014년 380만8,000㎘ 대비 10년 만에 17.3% 감소했다.

회식의 종말·코로나의 유산 ... '의무 음주'가 사라지고 있다
주류 소비 감소를 이끄는 첫 번째 축은 회식 문화의 해체다.
국내 주류 시장은 코로나19 이후 회식 문화 축소와 음주 트렌드 변화 영향으로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강제한 3년간의 비대면 일상은 회식을 낯선 풍경으로 만들었고,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에도 과거의 회식 문화는 완전히 복원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명절이 있는 분기에 주류 소비가 반등하는 계절성이 나타났다. 최근에는 그 패턴이 현저히 약해졌다. 술자리가 '의무'에서 '선택'으로 전환된 문화적 변화가 수치로 드러나는 것이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소주와 맥주, 와인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3%, 31.1%, 10.8% 감소했다. 모든 주종에서 소비 감소 추세가 나타났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국내 주류 출고량은 2022년 326만8,623㎘에서 2023년 323만7,036㎘, 2024년 315만1,371㎘로 2년 연속 감소했다. 출고량 집계가 시작된 2006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희석식 소주는 2019년 대비 10.9% 줄었고, 맥주 역시 4.6% 감소했다.

'소버 큐리어스' ... 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다
두 번째 축은 가치관의 전환이다.
음주를 지양하는 '소버 큐리어스' 문화가 확산하면서 주류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의식적 금주)란 '술에 취하지 않은'이란 뜻의 '소버 Sober'와 '궁금한, 호기심있는'이란 '큐리어스 Curious'를 합친 용어다. '술을 꼭 마셔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건강한 삶을 위해 술을 멀리하는 문화를 뜻한다.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는 2018년 루비 워링턴(Ruby Warrington)이 저서 "Sober Curious : The Blissful Sleep, Greater Focus, Limitless Presence, and Deep Connection Awaiting Us All on the Other Side of Alcohol"에서 처음 대중화한 개념으로, "술을 완전히 끊는 금주(Sobriety)"와는 달리 "꼭 마셔야 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음주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소버 큐리어스를 두고 "알코올이 몸과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충분히 인지하고 심사숙고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청년층 사이에서 무작정 취하는 것을 경계하는 금주·절주 문화가 보편화하고 있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이 현상이 특정 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령대별 주류 소비지출 감소는 50대, 60세 이상, 40대, 39세 이하를 망라한 전 연령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음주 중심 소비 구조가 약화되는 동시에, 2030세대를 중심으로 건강과 자기관리를 중시하는 '웰니스' 트렌드가 확산되면서다.
폭음 지표도 바뀌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월간 폭음률 중앙값은 33.8%로 2024년부터 2년째 하락 중이다. 전년도 35.8%에서 2.0%포인트 줄었다. 월간 폭음률은 최근 1년 동안 월 1회 이상, 술자리에서 남성 7잔·여성 5잔 이상 마신 비율을 의미한다. '몰아서 마시는' 문화가 수치로 확인될 만큼 완화되고 있는 것이다.

무알코올이 '대세'로 ... 위기가 새 시장을 키웠다
역설적이게도 주류 소비가 줄어드는 동안 무알코올·비알코올 제품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19년 150억 원 수준이던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는 코로나19가 확산된 2021년 400억 원대로 늘었고, 2024년에는 700억 원을 돌파했다. 2027년엔 1,000억 원대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IWSR에 따르면 무알코올 및 저알코올 시장은 2026년까지 연평균 9%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트렌드와 국내 시장이 나란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비·무알코올 맥주 매출은 전년 대비 21% 늘었다. 오비맥주의 올해 1분기 비·무알코올 맥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7% 증가했다. Herald Corp
세계적인 주류 시장 조사기관 IWSR에 따르면 전 세계 무·저알코올 시장 상위 10개국의 2023년 판매액은 한화 약 18조 원 규모에 달한다.

주류 3사의 생존 전략 ... 저도화·수출·RTD로 돌파구
주류업계는 구조적 내수 감소를 인정하고 전략 전환에 나섰다.
롯데칠성음료는 알코올 도수 0.3% 이하의 비알코올 맥주 신제품 '클라우드논알콜릭'을 출시했다. 롯데칠성음료는 2017년 무알코올 제품 '클라우드클리어제로'를 선보이며 해당 시장에 발을 들인 이래 지속적으로 라인업을 강화했다.
롯데칠성은 2022년 출시한 소주 '새로'를 중심으로 저도수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기존 인기 제품인 '처음처럼'보다 알코올 도수를 0.5도 낮춘 16도로 출시한 새로는 올해 재단장을 통해 알코올 도수를 16도에서 15.7도로 추가로 낮췄다. '새로 살구'와 '새로 다래'는 알코올 도수 12도의 저도주 라인업을 확대했다.
하이트진로는 '하이트제로 0.00'과 '하이트 논알콜릭 0.7%'를 판매 중이다. 해외 시장에서는 과일소주를 전면에 내세웠다. 관세청에 따르면 과일소주가 포함된 리큐르 수출액은 지난해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구조적인 감소세에 접어든 만큼 수출 다변화가 실적 회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알코올 시장 패권을 둘러싼 대기업 간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이 시장의 1위는 하이트제로다. 10년 넘게 시장을 지켜온 하이트진로의 끈기가 빛을 발했다. 오비맥주는 2023년 상반기 잠시나마 무알코올 맥주 시장 점유율 1위를 가져오기도 했다.

시장은 수축, 소비는 진화 ... '헬시 플레저'가 바꾸는 주류 산업의 방정식
국내 주류 소비 감소는 단순한 경기 위축이 아니다. 건강을 소비의 중심 가치로 삼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문화가 산업 전반의 방정식을 바꾸고 있다.
소버 큐리어스 세대는 술 자체를 끊기보다 "어떻게 마실 것인가"를 고민한다. 무알코올 음료로 분위기만 즐기고, 저도주로 건강과 취향을 동시에 챙기는 방식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로 인해 일반 맥주 소비는 줄었지만, 건강과 분위기를 동시에 챙기려는 스마트한 소비자가 늘어났다"고 진단했다.
기업들의 대응 속도가 시장의 구조적 전환을 반영한다. 비·무알코올 제품과 저도주, 하이볼 시장을 확대하는 한편 과일소주 등을 앞세운 해외 시장 공략에도 힘을 쏟고 있다.
소비량이 줄더라도 단가가 높은 프리미엄 저도주나 무알코올 제품으로 이동하면서 시장 질서가 재편되는 흐름이다. 업계 전반에서는 건강 중심 소비 트렌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음주 문화는 지금 전환점에 서 있다. '많이, 자주'에서 '가볍게, 의미 있게'로. 그 이동이 주류 시장의 지형을 근본부터 다시 그리고 있다()
스티븐의 머니챌린저 하승범 전문기자
thewithatt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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