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년 인큐베이팅, 생존 경로 개척
국립극단이 '2026 창작희곡공모'를 통해 원창작 장막 희곡 발굴과 3년에 걸친 장기 인큐베이팅 시스템 가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이번 공모는 단순히 우수한 대본을 선정하여 일회성 상금을 지급하는 단계를 넘어, 발굴된 희곡이 실제 극장의 무대 위에 오르기까지의 전체 생존 경로를 공공기관이 직접 책임지고 설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정책적 의미를 지닌다.
현재 한국 공연 시장은 상업적 성공이 보장된 기존 레퍼토리나 흥행성이 검증된 라이선스 작품 위주로 굳어져 있다. 이러한 구조적 환경 속에서 극작가의 원창작 희곡이 스스로 자립하기는 매우 어렵다.
국립극단은 2026년 당선작 선정 이후 2027년 명동예술극장 낭독공연 및 희곡집 발간을 거쳐, 2028년 명동예술극장 대규모 본공연으로 이어지는 확고한 3개년 작품 개발 경로를 제도적으로 명시했다. 이는 작가에게 당장의 자금 지원보다 절실한, 작품을 다듬을 시간과 이를 구현할 무대를 함께 제공하는 실질적인 생태계 설계 작업이다.

최대 규모 상금과 블라인드 심사
올해 창작희곡 공모는 대상 1편에 3000만 원, 우수상 2편에 각 1000만 원을 지급하여 총 50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되며, 이는 현재 국내에서 진행되는 미발표 희곡 공모전 중 최대 규모다. 지원 자격에는 신진 및 기성 작가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으며, 다수의 작가가 참여하는 공동 창작 방식도 허용한다.
공모 대상은 최소 90분 이상 상연되어야 하며, 소극장이 아닌 중극장 및 대극장 규모의 무대에 적합한 장막 희곡으로 한정된다. 심사의 공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출 서류 내 작가의 이름이나 이력 등 개인 신상 기재를 금지하는 전면 블라인드 심사 방식을 적용한다.
심사위원회는 오직 예술적 완성도, 무대화 가능성, 창의성 및 독창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만으로 텍스트를 평가하여 10월 초 당선작을 최종 발표한다.
오리지널 서사 향한 제도적 선언
이번 공모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쟁점은 원창작 희곡의 가치 보호를 위해 설정된 엄격한 배제 조건이다. 과거 일반 대중에게 유·무료 쇼케이스나 낭독공연 형태로 한 번이라도 공개된 이력이 있는 기발표작, 그리고 타 공공 및 민간 기관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재정 지원이나 수상을 받은 작품은 심사 대상에서 즉시 제외된다.
또한 소설, 영화, 웹툰 등 타 장르를 기반으로 한 각색작과 외국 작품을 한국 상황에 맞게 변형한 번안작 역시 응모가 불가능하다.
이는 기존에 존재하는 다른 지식재산권에 의존하지 않고, 백지상태에서 오직 작가의 고유한 서사 창작만을 선별하여 보호하겠다는 국립극단의 명확한 제도적 선언이다.
당선작의 저작권은 작가 본인에게 귀속되지만, 국립극단이 시상일로부터 5년간 독점적인 공연 제작 및 홍보 권리를 가지며, 지급되는 상금으로 저작재산권 이용료를 대체하는 합리적인 구조를 취한다.
낭독에서 본공연까지, 성과 증명
국립극단의 희곡 공모 제도가 단발성 행사가 아닌 장기 시스템으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은 이미 가시적인 극장 무대의 성과로 증명되고 있다.
1957년 처음 시작되어 천승세 작가의 '만선' 등 한국 연극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거장들을 발굴해 온 이 제도는 15년의 공백을 깨고 지난 2024년에 다시 부활했다.
이후 이 시스템은 서류상의 약속에 머물지 않고 실제 무대화로 연결되었다. 2024년 첫 대상을 수상했던 김주희 작가의 원창작 희곡 '역행기'는 체계적인 작품 개발 단계를 거쳐 올해 명동예술극장 무대에서 정식 본공연으로 상연된다.
이어 2025년 대상작인 이용훈 작가의 '모노텔' 역시 2027년 정식 무대화를 목표로 현재 수정 및 보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텍스트 발굴이라는 선언에 그치지 않고, 종이 위의 대본이 연출과 배우를 만나 물리적인 극장 상연으로 이어지는 실질적 통로가 안착했음을 보여준다.
원창작 생태계 복원을 위한 대안
국립극단의 창작희곡공모는 단기적인 성과주의에 매몰된 기존 창작 지원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핵심적인 대안 경로로 작용한다. 시장의 논리만으로는 새로운 창작물이 관객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물리적 기회를 얻기 힘들다.
공모 선정 직후부터 3년이라는 긴 시간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이번 인큐베이팅 시스템은 개별 작가의 데뷔와 역량 강화를 돕는 1차적 목표를 넘어선다.
창작자가 단 한 편의 희곡을 완성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쓰며 무대에 오를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자생력을 잃어가는 한국 연극계의 원창작 생태계 전체를 건강하게 복원하는 근본적인 구조적 대안이 될 것이다.
[2026 국립극단 창작희곡공모 안내]
▪️접수 기간: 2026년 6월 1일부터 6월 15일 18시까지 (마감 시간 이후 수신 불가)
▪️접수 방법: 이메일 접수 (contest@ntck.or.kr)
▪️제출 서류: 공모신청서, 작품 개요, 희곡 원고 (홈페이지 지정 서식 사용 필수)
▪️공모 대상: 상연 시간 90분 이상의 장막 희곡 (중·대극장 공연 가능 작품)
▪️참가 자격: 신진 및 기성 작가 제한 없음 (공동창작 가능)
▪️결과 발표: 2026년 10월 초 예정
[전문 용어 사전]
▪️장막 희곡: 일반적으로 상연 시간이 90분 이상 소요되는 긴 호흡의 연극 대본을 뜻하며, 복잡한 인물 관계와 다층적인 서사 구조를 갖추어 소극장이 아닌 중대극장 규모의 무대에 적합한 형식을 말한다.
▪️인큐베이팅 시스템: 발굴된 신작 대본이 곧바로 상연되지 않고, 공공기관이나 단체의 장기적인 계획 아래 전문가 워크숍, 낭독공연, 수정 및 보완 등의 단계적 개발 과정을 거쳐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체계적인 제작 지원 제도다.
▪️블라인드 심사: 평가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작가의 개인 신상 정보나 과거 수상 이력을 심사위원에게 전혀 제공하지 않고, 오직 제출된 텍스트 자체의 수준과 잠재력만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낭독공연: 본격적인 무대 장치나 동선 이동 없이, 배우들이 관객 앞에서 대본을 직접 소리 내어 읽어주는 실험적 형태의 공연이다. 정식 공연 전 대본의 입체적 구현 가능성과 극적 구조를 점검하는 필수 개발 과정이다.
▪️각색 및 번안: 각색은 소설, 영화, 웹툰 등 다른 장르의 기존 창작물을 연극 무대에 맞게 대본 형태로 고쳐 쓰는 작업을 의미하며, 번안은 외국 희곡의 내용이나 배경 등을 한국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변형하는 작업을 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