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침구도 다시 석유화학 원료로…테라클, 5군지사와 국방 폐섬유 '자원화' 손잡다

소각·매립 일변도였던 군 폐섬유, 해중합으로 고순도 원료 재탄생

경상·충청·전라 후방 군수 책임지는 5군지사, 민간 첨단 기술 선제 협력

2026년 재생원료 의무화 원년, 공공부문 순환경제 확산의 기폭제 되나

군복이 다시 석유화학 원료로 돌아온다.

 

화학적 재활용(해중합) 전문 기업 테라클이 지난 5월 26일 육군5군수지원사령부(이하 5군지사)와 '폐섬유 재활용을 위한 상호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장병들이 사용한 뒤 수명을 다한 군복·침구·매트리스 등 폐섬유를 소각하거나 매립하는 대신 분자 단위로 분해해 원재료로 되살리는 '해중합(Depolymerization)' 기술을 국방 현장에 처음 적용하는 협약이다.

 

단순한 환경 협약이 아니다. 대규모 공공 조직이 폐기물 처리 방식 자체를 전환하는 구조적 변화다. 정부가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를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어 파급력이 주목된다.

 

테라클이 육군5군수지원사령부(5군지사)와 ‘폐섬유 재활용을 위한 상호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가운데 왼쪽이 5군지사 박준범 사령관, 오른쪽이 테라클 권기백 대표이사 (사진출처 : 테라클)

5군지사, 왜 이번 협약의 핵심인가

 

5군수지원사령부는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본부를 두고 경상·충청·전라 등 대한민국 후방 전역의 보급·정비·수송을 총괄하는 육군의 핵심 군수 허브다. 1986년 창설 이후 제51·52·53군수지원단을 예하에 두고 수십만 장병의 식량·피복·유류 등 군수물자 전반을 책임져 왔다.


광역 지원 부대인 만큼 폐섬유 발생량 역시 방대하다. 장병 1인당 지급되는 전투복·동계 피복·침구류·매트리스 등을 감안하면 지원 부대 전체에서 연간 수백 톤에 달하는 폐섬유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까지 이 물량의 상당 부분은 소각 또는 매립 처리돼 탄소 배출과 예산 낭비라는 이중 부담을 초래해 왔다.


이번 협약은 5군지사가 '적극행정' 기조 아래 민간의 첨단 환경 기술을 능동적으로 수용한 선제적 결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군 특성상 보수적인 조달·폐기 체계를 유지해 온 공공 부문이 화학적 재활용이라는 차세대 기술을 공식 협력 대상으로 채택한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해중합이란 무엇인가, 물리적 재활용과 무엇이 다른가

 

테라클의 핵심 역량은 가수분해 기반 해중합 기술이다. 폴리에스터(PET) 계열의 폐플라스틱과 폐섬유를 고온·고압의 물과 반응시켜 분자 사슬을 끊은 뒤 원재료인 테레프탈산(TPA)과 에틸렌글리콜(EG)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이렇게 회수된 재생 TPA·EG는 신규 PET 수지나 폴리에스터 섬유 제조에 그대로 투입할 수 있어 '원료의 완전한 부활'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기존의 물리적 재활용(기계적 재활용)은 폐플라스틱을 녹여 펠릿으로 가공하는 방식이다. 처리 비용이 낮다는 장점이 있지만 혼방 섬유·유색 소재·오염 원단 등은 재활용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품질 저하가 심각하다. 군 폐섬유처럼 다양한 소재가 혼합된 대량 폐기물에 물리적 재활용을 적용하면 재생 원료의 품질이 낮아 실제 산업 소재로 활용하기 어렵다.


해중합은 이 한계를 정면으로 극복한다. 분자 단위 분해이기 때문에 색상·오염도·혼방 여부에 관계없이 고순도 원료를 회수할 수 있다. 테라클은 해중합 기반 재생 TPA를 톤 단위로 상업 공급한 세계 최초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2026년 1월에는 해양 폐기물에 대한 국제 지속가능성 인증인 ISCC PLUS OBP 인증도 획득했다.

 

연간 4,000톤 처리 공장 완공 ... 하반기 가동 임박

 

테라클은 현재 충남 당진에 연간 4,000톤 규모의 가수분해 해중합 상업화 공장을 완공한 상태다. 국내 최초의 해중합 전문 상업 공장으로, 올 하반기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2021년 창업한 테라클은 현대자동차·DSC인베스트먼트·인비저닝파트너스 등으로부터 누적 159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2025년에는 기후에너지환경부로부터 예비 그린유니콘으로 선정됐다. 매출이 아닌 기술력과 시장 확장 잠재력을 근거로 한 정부 인정이다.


5군지사와의 MOU 체결 타이밍은 공장 가동 시기와 맞물린다. 테라클 권기백 대표는 "올 하반기부터 군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폐기물을 즉각적으로 처리해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및 탄소중립 지표를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이 단순한 의향서가 아닌, 실제 물량 처리로 이어지는 운영 계약의 전 단계라는 신호다.

 

정책 흐름이 만든 필연적 접점

 

이번 협약의 배경에는 정부의 탈플라스틱 정책 전환이 자리한다.


환경부는 2026년 1월부터 재생원료 사용의무제를 본격 시행했다. 1단계는 연간 5,000톤 이상의 PET병을 생산하는 음료 제조사가 대상으로, 재생원료를 10% 이상 사용해야 한다. 의무 비율은 2030년까지 30%로 단계적으로 상향되고, 의무 대상 사업자도 2028년부터 연간 1,000톤 이상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2030년까지 폐플라스틱 발생량을 30% 이상 감축한다는 목표도 함께 제시했다.


섬유 분야의 변화도 빠르다. 2025년 1월부터 섬유 폐기물 분리수거가 의무화됐다. 분리수거된 폐섬유를 고품질 재생 원료로 전환하는 기술이 없다면 의무화 정책은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 테라클의 해중합 기술이 이 공백을 채우는 핵심 퍼즐로 부상한 이유다.

 

글로벌 재활용 수지 시장도 성장세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글로벌 재활용 수지 시장은 2025년 약 35억9,000만 달러에서 2035년 65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석유 기반 원료의 공급망 불안정이 커지는 상황에서 폐자원 기반 원료 회수 기술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공공부문 순환경제 협력 확대의 신호탄"

 

이번 협약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지속 가능성'이다. 일회성 수거 캠페인이나 이벤트성 업무협약과 달리 이번 MOU는 지속적인 업무 협력을 전제로 체결됐다. 5군지사에서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폐섬유를 안정적으로 수거해 재생 원료로 전환하는 구조적 순환 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테라클 권기백 대표는 "대한민국 후방 군수의 핵심인 5군지사에서 적극행정을 통해 선제적으로 폐기물 자원순환 체계를 구축한 것은 공공 순환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념비적인 이정표"라며 "향후 대량의 제복이나 섬유 폐기물 처리에 고심하고 있는 다양한 공공부문으로 순환경제 협력 범위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군에서 출발한 이 협력 모델은 경찰·소방·교도소·공공 의료기관 등 유사 제복·직물류를 대량 소비하는 다른 공공 영역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민간 패션·유통 기업들이 요구받고 있는 EPR(생산자책임재활용) 의무 이행 수단으로도 활용될 여지가 있다.

 

자원 안보 시대, 폐기물은 '새로운 유전'

 

국제 원자재 시장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시대에 폐플라스틱과 폐섬유는 더 이상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아니다. TPA와 EG는 합성섬유·플라스틱·필름 등 수많은 산업 소재의 기초 원료로, 현재 전량 석유 기반으로 생산된다. 해중합 기술이 이 원료를 폐기물에서 회수한다는 것은 석유 수입 의존도를 줄이는 실질적인 자원 안보 전략과 직결된다.


5군지사와 테라클이 함께 만들어낸 이번 협력 모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례 연구다. 공공부문의 대량 폐기물이 첨단 화학 기술을 만나 고부가 산업 원료로 탈바꿈하는 순환경제의 실물 구조가 국방이라는 보수적인 영역에서 처음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주목된다.

 

테라클은 2021년 창업한 친환경 스타트업으로 PET 기반 폐플라스틱과 폐섬유를 화학적 재활용(해중합)을 통해 원재료인 TPA(테레프탈산)와 EG(에틸렌글리콜)로 되돌려 판매한다. 충남 당진에 국내 최초의 가수분해 해중합 상업화 공장을 완공했으며 현대자동차·DSC인베스트먼트·인비저닝파트너스 등으로부터 누적 159억 원을 투자받았다. 2025년 기후에너지환경부 예비 그린유니콘으로 선정됐다()

스티븐의 머니챌린저 하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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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5.29 11:18 수정 2026.05.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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