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정비사업 이주 쓰나미 2만3000가구 멸실에 전세시장 ‘비상등’
재건축 재개발 이주 수요 1만8000가구 몰리는데 입주 물량은 급감
전세 매물 감소 이주비 규제·실거주 강화 겹치며 서울 임대차시장 불안 확산
서울 곳곳에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전세시장이 거센 압박을 받고 있다. 이미 2만3000가구가 철거돼 시장에서 사라진 가운데 약 1만8000가구 규모의 추가 이주 수요가 대기하고 있다. 반면 신규 입주 물량은 급감하고 전세 매물은 줄어들고 있어 서울 임대차시장의 불안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건축 사업이 진행 중인 서울 강동구 천호우성아파트 소유주 A씨는 올해 3월부터 시작된 이주 이후 두 달 가까이 새 전셋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자녀 교육과 직장 문제로 기존 생활권을 유지하려 했지만 주변 전세 매물이 사실상 바닥난 상태다. 결국 경기 하남시까지 범위를 넓혀 거주지를 찾고 있다.
A씨는 "이주비 대출 한도가 6억 원이지만 주변에는 전세 물건 자체가 거의 없다"며 "간혹 매물이 나와도 보증금이 크게 올라 대출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동대문구 청량리8구역 재개발 조합원 B씨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올해 초부터 이주를 준비했지만 아직 적절한 주거지를 찾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6억8000만 원 수준이었던 인근 전용면적 84㎡ 아파트 전세가격은 최근 8억 원까지 상승했다.
B씨는 "이주 기한은 다가오는데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할지, 생활권을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서울 전역에서는 정비사업 이주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재 이주가 진행 중인 사업장은 강남구 개포주공5단지(940가구), 양천구 신정4구역(1592가구), 용산구 한남2구역(1799가구) 등 9개 단지로 약 9000가구 규모다.
여기에 노원구 상계1구역(1082가구), 동작구 노량진3구역(1038가구), 강동구 삼익파크(1092가구) 등 이주를 앞둔 사업장까지 포함하면 추가 이주 수요는 9000가구를 넘어선다. 서울 전체 전월세 매물이 약 3만3000가구 수준임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상당한 규모의 수요가 시장에 한꺼번에 유입되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시장에서 사라진 주택 물량이다. 현재 이주를 마쳤지만 공사에 착수하지 못했거나 착공 이후에도 사업이 지연된 미착공 사업장은 35개 단지에 달한다. 이 가운데 19개 단지, 약 2만3000가구는 철거가 사실상 완료돼 주택 공급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정비사업 공급 사이클이 심각한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진단한다.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서울 도시정비사업 인허가 물량은 2만5133가구로 전년 5만2819가구의 절반 수준까지 감소했다.
이후 서울시가 신속통합기획 등을 통해 사업 속도를 끌어올리면서 인허가 실적은 연간 3만5000~4만7000가구 수준으로 회복됐지만 실제 착공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PF 규제 강화에 따른 자금 조달 난항과 코로나19 이후 급등한 공사비 갈등이 사업 추진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시 착공 실적은 2023년 이후 최근 3년 평균 연간 2만5000가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인허가 물량의 약 60%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 정책도 전세시장 불안을 키우는 변수로 지목된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며 실거주 의무를 강화했고, 민간임대사업자를 포함한 다주택자 세제 혜택도 축소했다.
최근 비거주 1주택자의 이른바 '세 낀 매물' 거래를 허용했지만 정비사업 이주 수요를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주비 대출 규제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6·27 대책과 10·15 대책 이후 1주택자의 이주비 담보인정비율(LTV)은 40%로 강화됐다. 서울시 조사 결과 올해 이주 예정인 43개 사업장 가운데 91%에 해당하는 39개 사업장이 이주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착공이 늘면 이주 수요가 증가해 전세가격이 오르고, 전세난이 심화되면 이주가 지연되며, 이주 지연은 다시 착공 차질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주택진흥기금 500억 원을 긴급 투입하고 우선 160억 원 규모의 이주비 융자를 지원하고 있지만 시장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한시적으로 허용한 비거주 1주택자의 '세 낀 매물' 거래 역시 향후 전세시장에 또 다른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남혁우 남혁우 연구원은 "학군지와 직주근접 지역을 중심으로 비거주 1주택자의 실거주 복귀가 늘어날 경우 임대 매물 감소와 신규 전세 수요 증가가 동시에 발생해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입주 물량 감소도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4만9973가구였던 서울 공동주택 입주 물량은 올해 2만7127가구로 줄어들고, 내년에는 1만7197가구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더욱이 이 가운데 상당수는 장기전세주택이나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돼 정비사업 조합원들이 활용하기 어렵다.
결국 서울 전세시장은 공급 감소와 이주 수요 증가라는 이중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비사업 이주 수요가 향후 서울 임대차시장의 최대 불안 요인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전세 매물 감소와 입주 절벽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보다 정교한 공급 대책과 금융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의 : 031-563-2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