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회생 제도는 단순히 부실 기업을 연명시키는 인공호흡기가 아니다.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로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의 부채를 과감히 조정하고, 행정적·재무적 틀을 재정비하여 시장으로 건강하게 복귀시키는 ‘재도전의 사다리’다. 그런 의미에서 회생법원은 철저히 ‘회생기업의 입장’에서 업무를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다. 법원의 모든 절차와 판단은 기업의 습통을 트여주고, 고용을 유지하며, 지역 경제의 붕괴를 막는 방향으로 수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서울, 수원, 부산에 이어 대전, 대구, 광주까지 총 6개의 회생법원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지방 전문회생법원의 대대적인 확충은 전국 어디서나 신속하고 전문적인 회생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내실’이다. 법원의 확대가 곧바로 기업회생의 성공률 제고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행정 간소화, 구성원들의 전문성 강화, 그리고 오랜 약습인 지역주의 타파라는 세 가지 과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먼저, 소통과 행정 절차의 혁신이 필요하다. 원활하고 정확하지만 ‘빠르게’
회생 절차에 돌입한 기업에 가장 치명적인 적은 바로 ‘시간’이다. 유동성이 고갈된 상태에서 법원의 인가나 결정이 지연되면 기업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게 되고, 결국 회생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파산으로 직행하기 십상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회생기업과 위임대리인(법무법인) 간의 업무 협력을 증진하고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법원 차원의 행정적 절차 간소화가 시급하다. 현재의 회생 절차는 지나치게 방대하고 복잡한 서류 제출과 경직된 보고 체계에 얽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 소통 창구의 고도화이다. 서류의 접수와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전용 시스템을 강화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불필요한 대면 및 중복 보고 축소가 필요하다. 대리인과 기업이 오직 ‘기업 정상화’라는 본질적인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확성을 기한다는 명목으로 속도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원활하고 정확하되 빠르게’ 진행되는 행정 서비스야말로 회생법원이 기업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구조 조치다.
두번쨰로 관리위원과 CRO의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법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운용하는 주체의 역량이 부족하면 현장에서는 잇박자가 난다. 현재 회생 현장에서는 법원을 대리해 회생 업무를 총괄하는 관리위원과, 법원의 위임을 받아 기업에 파견되는 구조조정 전문 임원인 CRO(Chief Restructuring Officer)의 업무 역량 부족으로 인해 절차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회생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단순히 숫자를 맞추거나 기계적인 규정 준수만을 강요하는 관리위원과 CRO는 기업의 재도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다.
새롭게 승격된 대전·대구·광주 회생법원이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회생 업무 능력이 검증된 판사들이 전면 배치되어야 한다. 아울러 관리위원과 CRO에 대한 철저한 전문성 검증과 지속적인 역량 강화 교육이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CRO는 은행의 지점장이나 이와 관련된 금융권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기업 구조조정의 전문성보다는 금융 채권 회수에 치우친 시각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구태연한 지역주의 타파가 필요하다. 로펌 선택의 기준은 오직 능력이어야 한다
지방 회생법원의 출범과 함께 가장 경계해야 할 구태는 바로 ‘지역주의의 매물’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타 지역의 경험 많은 전문 법무법인을 위임대리인으로 선임했다는 이유로, 은연중에 자기 지역의 로펌과 재계약을 독려하거나 압박을 가하는 약습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지극히 폐쇄적이고 낙후된 행태다.
나도 회생기업을 많이 돕고 있는데, 회생 업무를 잘하는 전문 로펌을 한 기업에게 소개하였고 해당 기업은 어려운 사건이지만 풍부한 노하우를 가지고 기업의 정상화를 진행시킬 계획을 가지고 위임업무 계약을 하고 일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법원의 관리위원은 왜 타 지역 로펌과 계약을 했냐며 대표자를 타박하였고, 불안해진 대표자는 위임계약을 진행한 법무법인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말았다. 물론 일을 해봐야 한다. 결과적으로 해당 업체는 결국 지역주의에 매물되고, 경험이 부족한 관리위원과 관리위원의 하수인처럼 행동하는 CRO 때문에 결국 파산하였다. 지방에 12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자동차 부품사였는데, 이 기업은 파산으로 인해 20여 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회생은 기업의 생사가 걸린 단 한 번의 기회다. 대리인 선임의 유일한 기준은 ‘해당 로펌이 유사 업종의 회생 경험이 풍부한가’, ‘법원 및 채권단과의 까다로운 조율을 성공적으로 이끌 역량이 있는가’에 두어야 한다. 단지 지역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유능한 대리인을 배척하고 지역 로펌을 강요하는 것은, 회생기업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을 넘어 기업을 사지로 모는 행위와 다름없다. 전국의 회생법원은 이러한 구태연한 약습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경쟁력 있는 타 지역 로펌의 노하우가 지역 회생법원에 유입되어 자극을 줄 때, 해당 지역 로펌들의 전문성도 함께 상향 평준화되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회생법원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기업의 부채를 과감히 절감하고 제도적 울타리를 제공하여, 그들이 다시 시장에서 당당히 재도전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모으는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전국 6개 회생법원 시대를 맞이했다. 대전, 대구, 광주 등 지역 거점 회생법원들은 단순한 행정구역의 확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 경험 많은 판사와 전문성 있는 관리위원의 전면 배치, 행정 절차의 획기적인 간소화, 그리고 혈연과 지연을 넘어선 철저한 능력 중심의 업무 환경 조성을 통해 ‘기업 회생의 진정한 파트너’로 거듭나야 한다.
버랑 끝에 선 기업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법원, 관리위원, CRO, 그리고 법무법인, 조사위원이 오직 ‘기업의 재도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지키는 최전선에 선 회생법원의 과감하고 전문적인 변화를 기대한다.
윤병운
(사)한국기업회생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