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기사] 부산 광복동 한복판에 왜 ‘대구경북 회관’이 있을까?

- 신도시 대신 원도심 택한 이유… 교통 요충지이자 이주민들의 ‘첫 발자국’

 

 

부산 광복동에 대구경북도민회관이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배경은 바로 ‘인구’에 있다. 통계학적으로 현재 부산에 거주하고 있는 대구·경북 출향인은 약 13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부산 전체 인구(약 330만 명)의 3분의 1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이들의 역사는 한국전쟁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란 수도였던 부산으로 수많은 대구·경북 인구가 유입되었고, 이후 1970~8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 시기에도 수많은 대구·경북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부산의 신발, 섬유, 조선 산업 현장으로 이주했다.


이들이 부산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결속력을 다지기 시작했고, 지난 2002년 ‘재부대구경북시도민회’라는 공식 조직으로 출범했다. 부산 내 수많은 향우회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결속력과 규모를 자랑하는 조직으로 성장한 배경이다.


■ 신도시 아닌 ‘광복동’… 애환과 향수가 서린 원도심의 상징성


그렇다면 왜 해운대나 서면 같은 modern한 신도시가 아닌, 올드타운인 ‘광복동’이었을까. 여기에는 공간이 가진 역사적 접근성이 작용했다.
과거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광복동과 남포동 일대는 부산의 정치, 경제, 문화의 절대적 중심지였다. 특히 인근의 부산역과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은 대구·경북에서 기차나 버스를 타고 부산에 첫발을 내디딘 이주민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관문이었다. 고향을 떠나온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서로의 애환을 달래고 정보를 교류하던 장소가 바로 이 원도심 일대였던 셈이다.
광복동 인근에서 40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이 모 씨(68)는 “예전부터 이 동네에는 대구, 안동, 포항 등 경북 각지에서 내려와 자리를 잡은 상인들과 직장인들이 정말 많았다”라며, “그들에게 광복동은 고향을 연결하는 심리적 통로이자 청춘을 바친 삶의 터전 그 자체”라고 전했다.


■ 숙원사업의 결실… 6층 규모 새 회관으로 ‘영남 상생’ 이끈다.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향우들의 염원은 마침내 거대한 결실을 보았다. 오랜 준비와 모금 끝에 지난 2025년 11월 11일, 광복동 현지에 연면적 260여 평, 지상 6층 규모의 현대식 새 도민회관 건립(준공)이 완료된 것이다.


새롭게 문을 연 도민회관은 단순한 친목 도모의 장소를 넘어섰다. 대구·경북의 우수한 특산물을 부산 시민에게 소개하는 직거래 장터 역할을 하고, 영남권의 인적·물적 교류를 잇는 민간 외교관의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신공항이나 맑은 물 공급 등 지자체 간의 이해관계로 때로는 갈등을 빚기도 하는 대구·경북과 부산이, 민간 차원에서는 여전히 끈끈한 유대감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광복동 패션거리 한구석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대구경북도민회관. 이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고향을 떠나 부산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부산의 발전을 함께 일궈온 130만 대구·경북인들의 당당한 발자취이자, 영남권 상생을 향해 열려 있는 아름다운 이정표다.

작성 2026.05.28 10:12 수정 2026.05.2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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