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게 더 필요한 이야기의 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잊혀진 ‘자기만의 목소리’

이야기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하는 감각

펩 브루노가 말하는 좋은 이야기의 조건

어른에게 더 필요한 이야기의 힘

《이야기는 축제야》가 건네는 위로와 회복

 

 

 

사람들은 매일 수많은 말을 쏟아내며 살아간다. 메신저 알림은 끊임없이 울리고, 짧은 영상과 자극적인 콘텐츠가 쉬지 않고 소비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일은 드물어졌고, 감정을 천천히 설명하는 능력 또한 희미해졌다. 많은 어른들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감각 속에서 살아간다.

 

《이야기는 축제야》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표면적으로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처럼 보이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는 이 책이 어른을 향해 더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스페인의 이야기꾼 펩 브루노는 “우리 안에는 이미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특별한 재능이나 화려한 언변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 안에 숨어 있는 기억과 감정을 발견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28년 동안 세계 곳곳을 돌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는 이야기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삶을 연결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친구와 나눈 대화, 가족과의 식사 시간, 오래전 상처받았던 기억조차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너무 바쁘게 살아온 탓에 그것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는 효율적인 사람을 원한다. 짧고 빠르게 핵심만 전달하는 능력이 중요해졌고, 감정과 경험을 천천히 풀어내는 시간은 점점 사라졌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명하는 데 서툴러졌다. “괜찮다”는 말 뒤에 감정을 숨기고,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의 이야기를 뒤로 미룬다.

 

《이야기는 축제야》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천천히 말을 건넨다. 좋은 이야기는 거창한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 혼자 상상했던 장면 하나도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이야기의 소재를 찾는 방법부터 이야기를 정리하고 전달하는 과정까지 차근차근 알려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단순히 ‘말 잘하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자기 안의 기억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야기는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독자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펩 브루노는 오랫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야기꾼으로 활동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야기의 본질은 ‘완벽함’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야기를 하다가 실수할 수도 있고 긴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완벽한 문장보다 솔직한 감정에 더 깊이 반응한다.

 

이 책은 이야기하는 사람이 불안해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어디서 연습해야 하는지, 사람들 앞에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까지 세밀하게 다룬다. 마치 오랜 시간 경험을 쌓은 선배가 옆에서 조용히 조언해주는 느낌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이야기를 축제에 비유한 점이다. 축제는 혼자 완성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이고, 각자의 목소리가 섞이며 분위기를 만든다.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순간 사람들은 서로 연결된다. 결국 이야기는 인간관계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자 가장 따뜻한 소통 방식인 셈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안드레아 안티노리의 그림이다. 그는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 주목받은 일러스트레이터답게 재치와 상상력이 넘치는 장면들을 펼쳐 보인다. 빨간 망토를 입은 소녀가 등장하고, 이야기 속 인물들이 자유롭게 페이지를 넘나든다. 독자는 그림 속 작은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들게 된다.

 

안티노리의 그림은 단순한 삽화를 넘어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글이 설명하지 않는 감정을 그림이 대신 전달하고, 그림이 던진 상상을 문장이 이어받는다. 덕분에 독자는 책을 읽는 동시에 한 편의 공연을 관람하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그림들은 어른 독자에게 잊고 있었던 감각을 되살린다. 계산과 효율에 익숙해진 시선 대신 자유롭게 상상하는 즐거움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정작 더 큰 울림을 받는 것은 어른 독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야기는 축제야》는 단순한 독서나 말하기 기술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게 만드는 책이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기억을 꺼내고,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이야기란 거창한 문학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을 누군가와 나누는 일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의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더 깊은 이야기를 갈망한다. 누군가의 진짜 경험과 감정이 담긴 이야기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펩 브루노는 이 책을 통해 우리 모두 안에 이미 이야기꾼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필요한 것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자기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축제야》는 아이들에게는 상상력을, 어른들에게는 잊고 지냈던 감정을 되돌려주는 책이다. 그리고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가.”

 

 

삶을 바꾸는 동화 신문 기자 kjh0788@naver.com
작성 2026.05.22 09:08 수정 2026.05.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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