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낀 집 풀어도 그림의 떡” 현금 14억 있어야 서울 아파트 산다
정부, 비거주 1주택자 ‘세낀 매물’ 거래 허용했지만 시장은 냉랭 “하이닉스 성과급 받아도 버겁다” 푸념
정부가 서울 아파트 시장의 ‘매물 잠김’을 해소하겠다며 비거주 1주택자의 ‘세 낀 집’ 거래까지 허용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싸늘하다. 전세보증금이 선순위로 잡히는 구조 탓에 주택담보대출이 사실상 막히면서,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자산가가 아니면 접근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수요자 사이에서는 “결국 현금 부자만 집을 살 수 있는 구조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19일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6만2910건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규제 완화 조치를 발표한 직후인 지난 12일(6만3985건)보다 오히려 1075건 감소했다. 정부는 지난 12일 비거주 1주택자와 다주택자가 보유한 ‘세 낀 매물’도 연말까지 매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주택을 매수할 경우 4개월 안에 실거주해야 하는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한 것이다.
정부의 계산은 명확했다. 실거주 의무를 풀어 매물 출회를 유도하고, 얼어붙은 거래 시장에 숨통을 틔우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고 다시 전세나 월세로 돌리면서 매매 물량은 오히려 줄어드는 흐름이다.
실제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전월세 매물은 3만1448건에서 3만2570건으로 증가했다. 시장에서는 “세 낀 집은 팔기도 어렵고 사기도 어렵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핵심은 대출이다. 현행 규제지역의 담보인정비율(LTV)은 40%다. 원칙적으로 15억원짜리 아파트라면 최대 6억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이 이미 집값의 40%를 넘고 있으면 금융권은 추가 대출을 내주지 않는다.
문제는 서울 아파트 상당수가 이미 이런 구조라는 점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은 약 50% 수준이다. 사실상 서울의 대부분 ‘세 낀 아파트’는 주담대가 막혀 있다는 의미다. 임차인 퇴거 시점까지 기다려도 전세퇴거자금대출은 통상 1억원 안팎에 그친다.
결국 현금 동원력이 승부를 가른다. 일반 매물은 15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 현금 9억원 정도면 접근 가능하다. 그러나 같은 가격의 세 낀 매물은 사실상 14억원 가까운 현금을 손에 쥐고 있어야 거래가 가능하다. 시장에서 “주식 투자로 수십억원을 벌었거나, SK하이닉스급 성과급을 받는 고소득 직장인 정도는 돼야 가능하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집주인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부는 시세보다 1억~2억원 낮춰 급매로 내놓고 있지만 거래는 좀처럼 성사되지 않는다. 대출이 막혀 있는 데다, 임차인이 거주 중인 집 특성상 집을 보여주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임차인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직접 매수하는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컨대 10억원짜리 아파트에 전세보증금 6억원을 내고 거주 중이라면 나머지 4억원을 주담대로 충당해 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전세보증금 6억원 가운데 전세대출이 섞여 있다면 그 금액만큼은 다시 현금으로 메워야 한다. 결국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높은 현금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예견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가 지난 2월 다주택자의 세 낀 매물 거래를 허용했을 때도 강남권 초고가 아파트를 제외하면 거래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강남권은 25억원을 넘는 고가 아파트 비중이 높아 애초부터 현금 자산가 중심 시장이었다. 주담대 한도가 2억원 수준에 불과해 일반 실수요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 낀 매물의 전세보증금이 LTV를 초과하더라도 일정 범위 내에서는 주담대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처럼 거래가 막히면 결국 매물이 시장에서 사라지고, 이는 다시 ‘매물 잠김’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대출 규제를 추가로 완화할 경우 집주인들이 다시 호가를 올리며 집값 상승을 자극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장의 어려움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세 낀 매물까지 대출을 확대할 경우 가격 상승 기대를 다시 자극할 수 있어 추가 완화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시장이 다시 ‘현금 부자의 리그’로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거래를 늘리겠다며 문을 열었지만, 정작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냉소가 시장을 뒤덮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