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가 보고서를 쓰고, 시세를 분석하고, 투자 수익률을 계산하는 시대다.
부동산 시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각종 플랫폼은 실시간 데이터를 제공하고, 알고리즘은 가격 추이를 예측한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방대한 정보가 정리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다.
이 시대에 전문가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20년이 넘는 공인중개사로 현장을 지켜왔다.
계약서 한 장이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 계획이라는 사실을 수없이 경험했다.
또한 500권이 넘는 전자책을 집필하며 정보의 구조화와 전달 방식에 대해 고민해왔다. 기술은 분명 유용하다. 나 역시 AI를 활용해 자료를 정리하고 흐름을 분석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낀 한 가지는 분명하다.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은 신뢰다.
부동산 거래는 숫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매가, 전세가, 금리, 수익률은 의사결정의 요소일 뿐이다. 마지막 판단의 순간에 사람들은 데이터를 보면서도 동시에 ‘사람’을 본다. 이 중개사를 믿어도 되는가, 이 조언은 책임을 동반하는가를 묻는다
.
AI는 평균값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지역의 미묘한 분위기, 학군에 대한 학부모들의 실제 반응, 재건축 추진위원회 내부의 온도차까지 읽어내지는 못한다. 현장은 통계보다 복합적이다. 현장에는 망설임과 기대, 불안과 희망이 함께 존재한다.
전문가의 역할은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정보를 선별하고, 맥락을 읽고, 책임 있게 해석하는 것이다.
AI 시대의 역설은 여기에 있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전문가의 기준은 더 엄격해진다. 데이터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지만, 데이터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빠른 분석보다 중요한 것은 신중한 해석이며, 화려한 예측보다 중요한 것은 책임 있는 조언이다.
부동산 시장은 특히 신뢰 산업이다. 한 번의 판단이 수억 원의 차이를 만들고, 한 번의 계약이 수십 년의 삶의 방향을 바꾼다. 그 무게를 아는 사람만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경험은 단순한 경력이 아니라 책임의 축적이다.
나는 500권의 책을 쓰며 한 가지를 배웠다. 많이 생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라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중개 현장에서도 성사율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율이다.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고객이 “그래도 이 사람 말은 믿을 수 있다”고 느낄 때 전문가의 가치는 살아난다.
AI는 효율을 높여준다.
그러나 신뢰는 관계 속에서 쌓인다.
AI는 시세를 제시한다.
그러나 최종 선택의 책임은 인간이 진다.
앞으로 더 많은 기술이 등장할 것이다. 부동산 시장도 더 정교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가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준이 더 엄격해질 뿐이다. 속도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와 책임으로 버티는 사람이 남는다.
속도보다 깊이,
정보보다 해석,
예측보다 책임.
AI 시대, 전문가의 가치는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신뢰의 밀도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장을 지켜온 시간과, 선택의 순간마다 책임을 감당해온 태도가 쌓여야 비로소 생긴다.
기술은 발전한다.
그러나 신뢰는 여전히 사람이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