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 왕국은 국왕의 통치 정당성과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공식 역사서 편찬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였다. 대표적인 정사인 『중산세보(中山世譜)』와 『구양(球陽)』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외교 전략과 정치 이념이 반영된 국가 프로젝트였다.

이 역사서들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생존해야 했던 류큐의 치밀한 외교 지략을 보여주는 핵심 사료이다.
『중산세보(中山世譜)』는 제2쇼씨 왕조 시기에 완성된 류큐 왕국의 대표적인 정사이다. 그 기초가 된 책은 1650년 하네지 조슈(羽地朝秀)가 국문으로 편찬한 『중산세감(中山世鑑)』이었다. 이후 1701년 사이타쿠(蔡鐸)가 이를 한문으로 정리하였고, 18세기 초 사이온(蔡温)이 내용을 보완하면서 현재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 책이 한문으로 작성된 이유는 분명하다. 류큐는 명·청과의 책봉(冊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사신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격식 있는 국가 기록이 필요하였다. 즉 『중산세보』는 역사서이면서 동시에 외교 문서였다.
특히 사쓰마 번의 간접 지배 사실은 본문이 아닌 별도의 부권(附卷)에 수록하여 관리하였다. 이는 중국에 일본 지배 사실이 알려질 경우 외교적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류큐가 유지한 일중양속(日中兩屬) 체제의 상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구양(球陽)은 18세기 쇼케이왕(尚敬王) 재위기에 편찬된 또 다른 공식 역사서이다. 1743년 국가 차원에서 기록 사업이 추진되었으며, 데이 헤이테쓰(鄭秉哲) 등이 편집을 맡았다.
총 22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단순한 왕의 연대기가 아니다. 정치, 외교, 재정, 종교, 사회 제도는 물론 지진, 태풍, 기근과 같은 자연재해까지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또한 효행을 보인 평민, 특이한 사건, 지역 사회의 변화까지 상세히 남겨 당시 류큐 사회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다.
구양은 류큐가 독자적인 기록 문화를 갖춘 정치 체제였음을 증명하는 사료이며, 오늘날 류큐 연구의 핵심 자료로 평가된다.
이들 역사서에는 통치 이념도 반영되어 있다. 특히 ‘일류동조론(日琉同祖論)’은 중요한 정치적 장치였다. 이는 류큐 왕실이 일본과 같은 조상을 가졌다는 서사를 정사에 포함시킨 것으로, 사쓰마 번과의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충성스러운 책봉국의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즉 중산세보와 구양은 역사 기록이자 외교 전략 문서였다.
중산세보(中山世譜)와 구양(球陽)은 류큐 왕국이 정치적 독립성과 외교적 생존을 위해 선택한 지적 무기였다. 군사력이 아닌 기록과 외교 전략을 통해 국가의 정통성을 구축한 것이다.
이 정사들은 오늘날에도 오키나와(沖縄)의 역사 정체성을 이해하는 핵심 자료이며, 류큐 왕국이 단순한 섬 왕국이 아니라 고도의 관료제와 기록 문화를 갖춘 해양 국가였음을 증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