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보면, 인생은 늘 다음 단계를 향한 준비의 연속이었다. 가을은 겨울을 예비하고, 청장년의 시절은 노년을 멀리서부터 마음에 그린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언젠가 맞게 될 삶의 마침표를 아주 작은 그림자로 품고 살아간다. 결국, 우리 인생은 그 본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채비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준비라는 것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우리는 겨울의 혹한을 다 알지 못하고, 노년의 고독을 미리 체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안과 희망 사이에서 무언가를 채우고 다듬으려는 행위, 그것이 바로 우리의 하루를 지탱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준비는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니라, 마음의 채비일 것이다.
하루를 시작하며 집을 나설 때부터 우리는 이미 돌아올 길을 알고 있다. 그처럼 인생 또한 어딘가로 다시 향하고 있다는 예감 속에서 흘러간다. 그러다 문득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는 절대적인 본향(本鄕)이 있을까.
본향은 지도로 찾는 주소가 아니다. 모든 짐을 내려놓아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평온,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조용히 품어주는 자리. ‘아, 나는 결국 여기에 닿기 위해 걸어 왔구나.’ 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스로 안식을 고백하게 되는 자리. 우리는 그곳을 찾기 위해 시간의 강을 건너고, 떠나고 돌아오고 헤매고 멈추며 그 고요한 자리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삶이 우리를 낯선 길로 데려갈 때, 우리는 수없이 방황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그 숱한 방황이야말로 우리를 본향으로 이끄는 역설적인 이정표인지 모른다. 길을 잃어봐야 비로소 '되돌아갈 자리'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 헤맴은 우리 내면의 고향이 얼마나 단단하고 영원한 휴식처인지 깨닫게 하는 성찰의 과정이다.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라는 찬송가 가사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 본향이 멀리 아득히 떨어진 공간이 아니라 결국 내 마음 가장 깊은 곳, 내면의 고요함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몸을 뉘이는 '집'과 영혼이 안식하는 '고향'은 그 궤를 달리한다. 진정한 귀향은 세상의 모든 소음을 걷어낸 뒤, 내면의 가장 깊은 샘에서 아주 고요히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향으로 가기 전까지의 시간, 지금 이 나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준비하는 동안의 삶은 단지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작은 온기를 남기기 위한 소중한 시간이다.
우리는 종종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만, 사실 우리가 남기는 '지금'의 흔적이 우리의 영원한 귀향을 준비한다. 친절한 말 한마디는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고, 타인의 그림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내 영혼의 폭을 넓히는 수련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미소를 건넬 때, 돌아갈 본향을 더 맑고 아름답게 닦아내는 것이다.
사람은 떠난 뒤에도 말 한마디, 한 번의 배려, 한 번의 미소로 오래 기억된다. 그래서 돌아갈 날을 의식할수록 우리는 자연스레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고요하게 살고자 한다.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크고 특별한 업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결국 타인의 마음에 남긴 '기억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 삶의 거대한 서사보다, 고통 받는 이에게 내민 따뜻한 손, 이유 없이 건넨 위로가 더 오래 남는다. 내가 머물렀던 자리에, 누군가 상처의 기억 대신 따스한 온기를 더 많이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삶은 충분하다. 우리가 남긴 그 온기는 시간을 넘어 오래도록 남아 누군가의 삶을 데우는 영원한 작은 불씨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는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증명이 될 것이다.
돌아갈 곳은 먼 하늘 너머, 미지의 공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내가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표정과 어떤 말과 어떤 손길을 남기느냐, 그 모든 순간이 곧 내가 마침내 닿을 본향의 모습 그 자체를 빚어낸다.
언젠가 모든 준비가 다 되었다고 고요히 느껴지는 날,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평생 찾아 헤매던 그 지상의 본향은 사실 거창한 도착지가 아니라, 내가 살아낸 모든 시간의 가장 따뜻한 결. 우리가 밟아온 시간의 결마다 새겨진 사랑과 고요와 이해가 모여, 마침내 우리 영혼의 쉼터인 본향이 완성된다. 그러니 두려워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 따스한 시선 하나를 남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먼 곳의 천국을 찾아 헤매는 대신, 지금 여기, 내 마음 안에 영원한 본향을 짓는 가장 확실하고 아름다운 행위가 될 것이다.
[문용대]
‘한국수필’ 수필문학상 수상
‘문학고을’ 소설문학상 수상
‘지필문학’ 창립10주년기념 수필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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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학 부회장’, ‘지필문학’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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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영원을 향한 선택’
‘날개 작은 새도 높이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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