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다가오면 지자체 공공시설 대관 현장은 좋은 날짜를 잡기 위한 후보자들의 조용한 전쟁터가 된다.
최근 양산에서 벌어진 박대조 인제대 특임교수의 '출판기념회 대관에 따른 초청 내빈 목록과 저서 사본 제출 요구' 소동은 강당 하나 빌리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양산문화원 시설관리 조례에 따라 '정치적 목적성'을 따지겠다고 나섰던 양산시가 지난 11일 하루 만에 "조례를 과도하게 해석했다"며 꼬리를 내렸다.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몇 가지 밝히지 못한 것이 있어 뒷맛은 씁쓸하기만 하다.
첫째, 최근 5년간 양산문화원과 양산예술회관에서는 현직 시장을 비롯해 국회의원, 시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당시에도 초청 내빈 명단과 저서 사본을 요구했었나? 아니라면 이것은 명백한 선택적.차별적 행정인데, 양산시는 이 행위를 한 담당 공무원을 어떻게 문책할 것인지 설명이 없다.
둘째, 출판설명회의 저서 내용 중에 어떤 문구나 내용이 있으면 정치 활동으로 간주되어 대관을 취소하는가? 이에 대한 객관적인 내부 심의 가이드라인은 있는 것인가?
셋째, 대관 허가가 완료된 상황에서 양산시립박물관장 명의의 공식 문서가 발송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양산문화원 관련 시설 관리 책임을 위탁받은 자로서 허가사항을 점검해 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수십 년 공직생활을 한 박물관장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전검열 금지, 재량권 남용 등 법적 문제가 불거질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구두 요청도 아닌 공문을 보냈다는 것은, 이 해프닝의 결재 라인이 어디까지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공공시설은 시민 모두의 자산이며 운영 원칙의 핵심은 ‘공정’과 ‘평등’이다. 조례에 '정치적 목적 제한' 규정이 있는 것은 시설이 특정 정당의 선거 캠프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지, 행정기관이 돋보기를 들고 검열관 노릇을 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이미 대관료까지 낸 시민에게 책 내용과 손님 목록을 요구하는 것은 헌법상 사전검열의 선을 넘은 명백한 행정권 남용이다.
더 큰 문제는 행정의 '일관성'이다. 선거에 나올 특정 후보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시민들은 그 배후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한다. 공무원이 특정 진영의 눈치를 보거나 윗선의 정무적 판단에 따라 움직인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 행정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한다.
작금의 사태는 양산시 공직사회가 시민의 공복(公僕)이 아닌,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정치 공무원'의 길을 택한 것은 아닌지 묻게 한다. 법과 원칙보다 '윗선'의 기류를 먼저 읽는 것이 유능함으로 대접받는 폐쇄적인 공직문화가 잔존하는 한, 행정은 결코 시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양산시의 이번 소동 역시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은 아닌가. 공무원은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기본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지키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양산시는 이번 자료 제출 철회로 사태를 일단락 지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추된 행정의 권위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공직사회의 진심 어린 성찰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뒤따라야 한다. 정치권력은 유한하지만, 시민을 위한 행정은 영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