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에는 유난히 ‘가짜’가 많다. 세계적 명화로 손꼽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나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처럼 한 점에 수천억 원의 가치가 매겨지는 그림은 언제나 위작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실제로 20세기 미술 시장에서는 천재적 위조범들이 등장해 미술계를 뒤흔든 사건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긴다. 왜 미술에는 이처럼 ‘가짜’가 넘쳐나는데, 음악에는 ‘가짜 명곡’이 거의 없을까.

가장 큰 이유는 예술의 구조적 차이에 있다. 회화는 본질적으로 ‘단 하나의 원본’을 전제로 한다. 세상에 단 한 점뿐인 작품이 존재하고, 그 진위에 따라 가격은 천문학적으로 달라진다. 위조범 입장에서는 단 하나의 그림만 속여도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반면 음악은 다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교향곡은 악보가 존재하는 한 전 세계 어디서든 연주될 수 있다. 음악은 애초에 복제와 재현을 전제로 한 예술이다. 원본 악보가 존재하더라도 작품의 가치는 특정 ‘물건’에 묶여 있지 않다.
진위 판별 방식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음악은 화성 진행, 선율 구조, 리듬 패턴 등 이론적 분석이 가능하다. 작곡가마다 고유의 스타일이 분명해 전문가들은 몇 마디만 들어도 작곡가를 구분해낸다.
실제로 과거 일부 작품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미발표 곡이라고 주장된 사례가 있었지만, 음악학적 분석과 문헌 대조를 통해 위작으로 밝혀졌다. 음향 구조와 기록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남아 있는 음악은 위조가 시도되더라도 비교적 빠르게 가려진다.
경제적 유인도 다르다. 미술 시장은 원본 한 점의 가격이 막대하다. 반면 음악은 공연권과 저작권 중심의 구조다. 설령 누군가 ‘가짜 베토벤 곡’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베토벤의 이름으로 저작권 수익을 얻을 수는 없다. 이미 고인이 된 작곡가의 명의를 이용해 장기간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위조의 동기가 상대적으로 약한 셈이다.
물론 음악계에도 완전히 위조가 없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명장으로 꼽히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은 지금도 위조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는 음악 작품이 아니라 악기라는 ‘물성(物性)’에 대한 위조다. 대중음악에서의 표절 논란 역시 존재하지만, 이는 특정 곡을 통째로 속이는 위작과는 성격이 다르다.
결국 차이는 ‘희소성’에 있다. 미술은 단 하나의 물건이 지닌 희소성이 곧 가치의 핵심이 된다. 반면 음악은 구조와 해석, 연주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예술이다. 한 점의 그림을 소유하는 것과, 한 곡을 반복해 연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래서 미술에는 위작이 번성하고, 음악에는 ‘가짜 명곡’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예술을 둘러싼 이 흥미로운 차이는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작품 그 자체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단 하나뿐인 원본’이라는 희소성을 사랑하는가. 그 답에 따라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