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라고 부르기엔 너무 긴 시간들
“그 시간들, 다 실패였던 것 같아.”
누군가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때 그 문장은 지나치게 간단하다. 수년을 견딘 선택과 버틴 밤들, 반복된 시도와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까지 단 한 단어로 덮어버린다. 우리는 이상할 정도로 과거에 인색하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그 과정 전체를 실패로 소급해 판결한다. 마치 시간이 목적지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면 존재 가치 자체를 잃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실패였을까. 아니면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진행 중’이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시간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종결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을까. 실패라는 말은 보통 마지막에 붙는다. 더는 선택이 없고 방향도 닫혔을 때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중간 지점에서도 그 말을 너무 쉽게 꺼낸다. 아직 문이 열려 있는데 스스로 불을 끄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실패로 보지 않기 위해 필요한 단 하나의 기준은 무엇인가. 복잡한 자기계발 이론도 성공한 사람의 회고담도 아니다. 단 하나의 기준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결과 중심 사회가 만든 시간의 왜곡
우리가 시간을 실패로 인식하는 방식에는 사회적 맥락이 깊게 깔려 있다. 성과는 빠를수록 좋고, 결과는 명확해야 하며, 설명은 짧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이력서는 빈칸 없이 채워져야 하고 서사는 상승 곡선을 그려야 한다. 이 구조에서 ‘아직 진행 중’이라는 상태는 애매함으로 취급된다. 애매함은 곧 무능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압축한다. 몇 년의 고민도 한 줄로 요약하고 수많은 선택의 맥락을 결과 하나로 환원한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론이 나오면 그 이전의 시간까지 함께 실패로 분류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지워진다. 선택의 이유, 그때의 최선, 환경의 제약,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가능성이다.
문제는 이렇게 실패로 규정된 시간이 개인의 내면에 남기는 흔적이다. 실패한 시간이 많다고 느낄수록 다음 선택을 시작하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해진다. 이미 실패한 사람이라는 자기 규정은 행동의 반경을 급격히 줄인다. 결국 시간에 대한 해석 하나가 현재의 태도를 결정하고 미래의 선택지를 제한한다.
실패를 정의하는 서로 다른 기준들
심리학에서는 실패를 ‘목표 대비 결과의 불일치’로 설명하지만 이 정의에는 전제가 붙는다. 목표가 고정돼 있고 종료 시점이 명확할 때만 가능하다는 전제다. 반면 삶의 많은 선택은 목표가 유동적이고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결과만으로 실패를 판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현실의 목소리도 비슷하다. 많은 사람은 뒤늦게 깨닫는다. 그때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다른 선택의 토대가 되었음을 말이다. 기술을 배우다 중단한 시간, 방향을 틀기 전의 시행착오, 버텼지만 성과가 없었던 시기들이 나중에 연결된다. 당시에는 무의미해 보였던 시간이 이후의 판단력을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고백은 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공 미담이 아니다.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기준이 생각보다 불안정하다는 사실이다. 같은 시간도 어느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뀐다. 무엇이 실패인가가 아니라 언제 실패가 되는가다.
단 하나의 기준, ‘종결되었는가’
지금까지의 시간을 실패로 보지 않기 위해 필요한 기준은 단 하나다. 그 선택이 종결되었는가다. 더 이상 선택할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으며, 스스로 닫았다고 선언했는가.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지 않았다면 그 시간은 실패가 아니다. 단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뿐이다.
종결되지 않은 선택에는 여지가 남아 있다. 방향을 수정할 수 있고, 속도를 바꿀 수 있으며, 의미를 재정의할 수 있다. 실패라는 판정은 이 여지를 지워버린다. 스스로에게 “이건 끝났다”고 말하는 순간 시간은 그때서야 실패가 된다. 결과가 나빴기 때문이 아니라 가능성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 기준은 위로가 아니다. 오히려 책임을 요구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여전히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멈춰 있더라도, 방치하고 있더라도, 종결 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그 시간은 진행형이다. 불편하지만 솔직한 기준이다. 실패가 아니라는 말은 곧, 아직 손을 놓을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많은 사람이 과거를 실패로 규정하는 이유는, 사실 현재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이미 실패한 것이라면 더 이상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준은 그 도피를 허락하지 않는다. 끝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나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직면하게 만든다.
시간을 다시 부르는 방식
지금까지의 시간을 실패로 부르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정말 끝냈는가. 아니면 지치거나 두려워서 중간에 이름을 붙여버린 것인가. 실패라는 말은 편리하다. 설명을 줄여주고 감정을 단순화한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우리는 시간을 잃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어정쩡함일 수 있고 느림일 수 있으며,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는 아니다. 실패는 선택의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만 성립한다. 그 기준을 분명히 세우는 순간 과거는 달라 보인다. 부정해야 할 시간이 아니라 아직 정리되지 않은 시간으로 남는다.
이 관점은 과거를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현재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실패가 아니었다면 다음 선택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간을 구제하는 일은 결국 자신을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신의 과거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면, 지금 진행 중인 선택 하나를 적어 보길 권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자. 나는 이것을 끝냈는가. 끝내지 않았다면, 아직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 지금도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