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춤
『도깨비의 춤』은 양자물리학과 시조 형식을 결합한 실험적 시집이다. 연속을 거부하고 불연속으로 도약하는 넉줄시 99편과 자유시 99편을 통해 시는 사유가 아니라 사건이 된다. 여기에 이 시집의 결정적 특징이 더해진다. 시인은 각 시에 대응하는 그림을 직접 그려 넣음으로써 읽는 행위 자체를 관측의 행위로 전환한다. 이 책은 읽는 순간 완성되는 책이 아니라 바라보는 순간 달라지는 책이다.
『도깨비의 춤』은 시인이 평생 몸담아온 물리학의 언어를 시의 리듬과 이미지로 동시에 변환한 결과물이다. 육근철은 양자의 핵심 개념인 불연속, 중첩, 얽힘을 주제나 비유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시의 형식과 그림의 배치 자체를 관측 장치로 사용한다. 시는 언어로만 존재하지 않고 그림과 마주하는 순간 다른 상태로 붕괴하거나 증폭된다. 독자는 독자가 아니라 관측자가 된다.
이 시집의 중심에는 시인이 10여 년간 집요하게 연구해 온 ‘넉줄시’가 있다. 시조 종장의 구조를 변형해 3·5·4·3의 리듬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이 형식은 연속적 서정을 거부한다. 여기에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이 개입되며 시는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잃는다. 같은 시라도 어떤 그림을 먼저 보고 어떤 행을 먼저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각 상태를 만들어낸다. 이는 시를 읽는 일이 아니라 시를 관측하는 일이라는 선언이다.
표제 ‘도깨비의 춤’은 이 시집의 미학을 가장 정확히 드러낸다. 도깨비는 실체가 아니라 현상이다. 관측되는 순간 모습을 바꾼다. 시와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독자의 시선과 순서에 따라 끊임없이 변위된다. 저자가 말하는 광기는 무질서가 아니다. 계산된 불연속 위에서만 가능한 리듬의 광기다.
이 시집은 과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과학이 인간의 감각과 인식을 어떻게 흔드는지를 시와 그림의 결합으로 체험하게 한다. 물리학자이자 시인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은 여기서 분리되지 않는다. 언어와 선, 여백과 파동은 하나의 관측 구조로 작동한다. 난초의 향기, 노년의 육체, 사랑과 상실의 기억은 읽히는 대상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현상이 된다.
『도깨비의 춤』은 대중 친화적인 시집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가 어디까지 변형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사례다. 시를 다시 위험한 장르로 되돌려놓는 책이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해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관측에 참여하는 일이다. 문지방 위에 올라타 시와 그림이 변하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는 일이다.
목 차
PART 01 관측의 문지방
도깨비 엿보기 - 불 눈 … 18
딜레마 - 속마음 … 20
관계의 얽힘 - 겨울 연(蓮) … 22
경계의 목소리 - 부정(父情) … 24
양자의 기척 - 양자(量子) … 26
호기심 많은 아이야 - 돌거북 … 28
우주에서 찾아온 손님 - 처서(處暑) … 31
우주 징검다리 - 시(詩) … 34
내 눈앞 - 물 폭탄 … 37
우연일까 - 아토초(Attosecond) … 39
즐겨봐 도깨비 세상 - 예지몽(豫知夢) … 41
기준을 바꿔야 해 - 블랙 홀 … 45
양자의 낌새 - 을사년(乙巳年) … 47
닫힘과 열림 - 씨앗 … 49
무리(無理)의 길 - 신인류 … 52
난실(蘭室)에서 - 난초 … 55
파인만 다이어그램 - 칠판 … 57
사랑 - 황새 … 59
빛 - 야경 … 61
외줄 위 관측 - 인생 … 63
배꼽은 - 배꼽 … 66
관측의 문턱 - 뮤즈 … 68
사랑은 도깨비 - 사랑 … 70
도깨비 손님 - 아리랑 … 72
꽃의 잔상 - 노박 … 75
PART 02 PART 04 도깨비의 춤
도깨비의 춤 - 춤 ㆍ 80
꽃밭에서 - 한 말씀 … 82
낮달 - 낮달 … 84
불연속의 꽃 - 날치 … 86
죄 지을 일 없는 꽃 - 흑장미 … 89
불확실성 시대 - 항해 … 92
넉줄시는 내 깃발 - 넉줄시 … 95
이중성의 변 - 수신 … 98
피워라 불연속의 꽃 - 허공 … 100
불연속의 탈춤 - 얼쑤 … 103
꽃과 나 - 노인 … 106
난초 시를 읊다 - 난(蘭) … 109
향의 이중성 - 춘정(春情) … 112
이중성의 열매 - 노년(老年)… 115
불연속의 패기 - 산불 … 118
양자 우물 속 청개구리 - 단풍 … 121
속앓이 - 속앓이 … 124
순례자여 - 걷다 … 126
도깨비 씨름 - 참선 … 128
파란 장미, 계속해 - 입술 … 131
징검다리 우주 - 다도해 … 134
귀여운 도깨비야 - 주마등 … 137
배꼽은 - 배꼽 … 140
바람의 언덕에서 - 만추(晩秋) … 142
아지랑이 길 - 자연 … 145
PART 03 고독한 얽힘
시(詩) - 가마 … 150
홀로 우는 곰나루 - 하야(夏夜) … 152
인생은 미쳐보는 것 - 소문 … 154
고독한 얽힘 - 현미경 … 157
송인(送人) - 꽃비 … 159
잊지 마오 맥놀이 사랑 - 동행(同行) … 162
이 마음 보내지 않아 - 해당화 … 166
움켜쥔 운명 - 열정 … 169
욕실에서 일어난 일 - 거울 … 171
호랑거미 생존 작전 - 거미 … 174
삐딱한 질문 - 질문 … 177
사막의 여우여 도깨비여 - 사막 … 180
허수의 눈밭 위 허수아비 - 빈 뜰 … 183
절름발이 시인 - 밀애 … 186
파도리의 밤 파도 - 회상(回想) … 189
사랑의 방향 - 진심 … 192
우리가 모르는 곳에 - 몽우(濛雨) … 194
아지랑이 도깨비 - 도깨비 … 198
PART 04 빛의 길, 영혼의 파동
인생 - 꽃 … 208
세월 꽃 - 매미 … 210
해후 - 모정(母情) … 213 동백의 눈 - 동백 … 216
사랑은 광파의 번짐 - 낭송(朗誦) … 218
파도여 파도여 - 연흔(漣痕) … 221
내가 잡은 것은 - 변주곡 … 223
동, 서의 파도 하나의 파동 - 동해 … 226
하모니(Harmony) - 시각(視覺) … 228
플랑크(M. Plank) 성(城) - 팝핑(Popping) … 231
별이야 달이야 - 별 … 233
유리창 적시는 빗방울 - 소낙비 … 236
빛나는 너 - 설경(雪景) … 239
해야 태양아 - 십자가 … 241
빛나다 눈물 살 - 빅뱅(Bigbang) … 244
빛이여 우리 모두 - 단풍 … 247
몽실몽실 감국 향 - 감국(甘菊) … 249
빛이야 우리 모두 - 원추리 … 252
사랑하는 동안만 - 인연 … 254
도깨비의 말 - 춤 … 257
바람을 일으켜라 - 바람 … 261
PART 05 얽힘 너머의 성찰
봄날의 도깨비 마당 - 도깨비 … 266
빈 볼펜 우주 - 봇나무 … 268
돌거북 할아버지 - 여보게 … 270
양자시대의 성찰 - 몽우(濛雨) … 272
당구공 처 보면 알지 - 조건 … 274
초경 치른 동국(冬菊) - 절창(絶唱) … 276
퀀텀 스냅샷 - 달 … 279
무녀리의 문워크 - 뜀박질 … 282
양자 세계의 길 - 무녀리 … 285
독락원은 홀로그램 우주 - 소망 … 289
천국의 눈 - 신의 눈 … 292
홀로그램 우주 - 시인 … 294
나는 프랑케슈타인 - 눈길 … 297
희망 - 우주 … 301
몽유양자도 - (輝江) … 303
무지개의 주장 - 추우(秋雨) … 307
해넘이 방의 기척 - 기러기 … 310
매혹의 홍 목련 - 미혹(迷惑) … 312
고목 나무 - 주목 … 315
소나기 도깨비 - 폭염 … 201
도깨비 세상 - 센서 … 204
이명(耳鳴) - 노을 … 317
DMZ 혼불 - DMZ … 319
빛의 이중성 - 춤 … 322
저자 소개
육근철은 물리학과 시를 동시에 통과해 온 시인이다. 1950년 대전에서 태어나 공주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평생 양자물리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과학의 언어로 세계를 설명하는 일에 익숙했으나 어느 순간 설명이 닿지 않는 지점에서 시를 선택했다. 그의 시는 이해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관측의 순간 발생하는 감각과 균열을 붙잡는다.
2014년 문학 사랑을 통해 등단한 이후 육근철은 ‘넉줄시’라는 독자적 형식을 집요하게 밀어왔다. 시조 종장의 구조를 변형해 리듬을 수직으로 쌓은 이 형식은 연속적 서사를 거부한다. 행과 행 사이의 공백은 사유의 여지가 아니라 도약의 공간이다. 그는 이를 양자 시대에 걸맞은 시적 구조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