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을 길으러 간 여인, 생명의 샘을 전하다
요한복음 4장은 예수께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벽을 허무는 장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4장 27절부터는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께서 한 여인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때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말한 그분을 와서 보라”고 외친다.
그녀의 증언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복음의 첫 선포’였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 여인이 복음의 통로가 되었고, 그녀의 마을은 예수를 ‘세상의 구주’로 고백하게 된다.
이 사건은 신앙의 시작이 결코 ‘거창한 자리’가 아니라, ‘삶의 현장’임을 보여준다.
제자들은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신 것을 이상히 여겼다.
그들에게 사마리아인은 경계 밖의 존재였고, 여인은 사회적으로도 낮은 위치였다.
하지만 예수는 인간의 경계에 갇히지 않았다.
그분의 관심은 ‘누구와 이야기했는가’보다 ‘누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였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 말씀한다(요 4:34).
이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 곧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예수의 사명은 단순히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사마리아 여인은 과거를 숨기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뒤 그녀는 더 이상 숨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며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라고 외쳤다.
그 고백은 부끄러움의 고백이 아니라 복음의 증언이었다.
그녀의 변화는 단 한 사람의 입술에서 시작된 믿음의 파동을 일으켰다.
마을 사람들은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께 나아왔으며, 직접 듣고 깨달아 “이분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시다”라 고백했다(요 4:42).
이 장면은 ‘개인 신앙이 공동체 신앙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말한다. 밭이 이미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지금이 바로 복음의 때라는 선언이다.
제자들은 아직 ‘때가 아니다’라 생각했지만, 예수의 눈에는 이미 ‘사마리아 사람들의 믿음’이 자라나고 있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영적 시선’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하나님은 언제나 누군가의 마음밭을 준비하고 계시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특별한 사역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물을 길으러 온 평범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예수를 만난 순간, 그녀의 일상은 사명으로 바뀌었다.
복음은 ‘특별한 자리’에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만남’ 속에서도 흘러간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도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대화 속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이 곧 복음의 통로가 된다.
요한복음 4장 27~42절은 “복음이 확장되는 최초의 장면”이다.
예수는 경계 밖의 여인에게 다가가셨고, 그 만남은 한 마을 전체의 구원으로 이어졌다.
복음의 시작은 늘 한 사람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오늘 만나는 ‘사마리아의 여인’은 어쩌면 바로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세상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명의 샘을 전한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또 다른 사마리아로 복음을 보내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