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의 얼굴들 6.
덜 애써도 되는 관계에 대하여
― 고립 이후, 관계를 유지하는 새로운 기준
고립을 통과한 사람에게 관계는 이전과 같은 의미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관계 회복의 실패가 아니라 기준의 변화다.
고립은 관계를 포기한 결과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된 마지막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관계에서 너무 오랫동안 자신을 소모한 끝에, 마음은 멈추는 쪽을 택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관계를 ‘애씀’으로 유지해왔다.
친밀함이라는 이름 아래 늘 이해해야 했고, 항상 응답해야 했으며,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는 쪽이 성숙하다고 배워왔다.
그 과정에서 관계는 쉬어가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 노동의 현장이 되었다.
고립은 사회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관계가 개인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 되었을 때 선택되는 방어 전략이다.
그래서 고립 이후의 회복은 관계를 다시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회복의 핵심은 덜 애써도 유지되는 관계를 알아보는 기준을 갖는 일이다.
관계의 수보다 구조가 중요해진다.
어떤 관계는 애쓰지 않아도 이어지지만, 어떤 관계는 노력할수록 자신을 잃게 만든다.
회복이란 이 차이를 분별할 수 있게 되는 상태다.
정신건강의학과 사회심리 연구에서도 회복 이후 중요한 요소로 ‘선택적 친밀성’을 강조한다.
모든 관계에 같은 무게의 감정을 쓸 필요는 없다는 인식이 정서적 안정성을 만든다.
건강한 관계는 희생으로 증명되지 않으며, 깊이는 감당의 크기로 측정되지 않는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버텨야 한다는 믿음은, 많은 고립을 만들어왔다.
세대에 따라 관계를 다시 세우는 방식은 다르다.
청년에게 덜 애써도 되는 관계란 비교와 평가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다.
중년에게는 역할을 내려놓아도 사라지지 않는 관계가 필요하다.
노년에게는 자주 보지 않아도 마음의 연결이 유지되는 관계가 중요하다.
공통점은 하나다. 모든 관계를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는 사실이다.
덜 애써도 되는 관계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다.
침묵이 오해로 바뀌지 않고, 거리가 실패로 해석되지 않으며,
감정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존중받는다.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응답하지 못하는 날이 있어도 관계가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관계는 개인의 노력보다 관계 자체의 구조에서 안정성을 만들어낸다.
관계 회복을 개인의 노력으로만 요구하는 사회는 또 다른 고립을 낳는다.
과도한 친절과 즉각적인 응답을 미덕으로 강요하는 문화 속에서 관계는 성과처럼 관리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사람들은 관계를 회피하거나 스스로를 지우는 방식으로만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고립 이후 우리가 배워야 할 관계의 기준은 분명하다.
더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
덜 노력해도 자신을 잃지 않는 관계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관계를 줄이라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고립은 관계를 거부한 흔적이 아니다.
관계 안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잠시 멈췄던 자리다.
그리고 회복은 다시 애쓰는 일이 아니라,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허락하는 용기다.
이것이 고립 이후 우리가 가져야 할 새로운 관계의 기준이다.
[필자 소개]

신정희 칼럼니스트
해피마인드 대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고 싶었어요 저자
SNS상에서는 ‘해피제이’로 활동
마음 건강과 관계 회복을 주제로
글과 강연을 이어가는 정서교육 전문가이자 작가다.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기 쉬운 고립과 감정 소진을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분석하며,
감정의 언어를 일상과 정책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청년·중년·노년을 아우르는 생애주기별 정서 회복 프로그램과
강연을 통해 지역사회, 공공기관, 교육 현장에서
마음 건강의 예방적 접근을 확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