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간, 다 실패였을까”라는 질문
살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 나는 대체 뭘 한 거지?”
열심히 살았던 것 같긴 한데 명확하게 손에 쥔 결과는 없다. 이력서에 적을 만한 성과도 없고, 자랑할 만한 전환점도 없다. 남은 건 기억조차 흐릿한 시간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결론을 내린다.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이 판단은 너무 빠르다. 그리고 너무 가혹하다.
성과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한 시기를 통째로 실패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 시간에 존재했던 감정과 경험, 변화의 조짐은 모두 삭제된다. 우리는 결과만 남기고 과정을 지운다. 하지만 삶은 결과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시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상태’로 지나간다.
문제는 이 ‘아무 일도 없는 시간’을 우리는 견디지 못한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이뤄야만 의미가 생긴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과 없는 시간은 곧 실패로 번역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로, 결과가 없으면 그 시간은 실패였을까.
성과 중심 사회가 만든 시간의 오해
현대 사회는 시간을 성과 단위로 측정한다. 몇 년 차인지, 무엇을 이뤘는지,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시간의 가치를 결정한다. 같은 3년이라도 어떤 사람의 3년은 ‘도약기’가 되고, 어떤 사람의 3년은 ‘정체기’로 불린다. 그 차이는 결과물이다.
이 구조 안에서 과정은 쉽게 무시된다. 준비, 방황, 멈춤, 반복 같은 시간은 기록되지 않는다. 성과로 환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과가 없는 시기를 ‘낭비’로 인식한다. 그 시기에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 내면의 변화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직선적인 성장 곡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축적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방향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시기,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는 종종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다만 그 연결 고리는 나중에야 보인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시간을 ‘살아내는 동안’에는 의미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끝난 뒤에야 판단하려 들고, 그 판단의 기준은 대부분 결과 하나로 수렴된다.
의미 없는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은 변화의 순간보다 정체의 시간을 훨씬 많이 경험한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내부에서는 인식과 가치관이 미세하게 이동한다. 이 변화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을 뿐이다.
사회적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성과가 없는 시간은 공동체의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동안 뭐 했어?”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시간을 숨기거나 스스로 깎아내린다. 의미가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설명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전환점은 ‘아무 일도 없던 시기’ 이후에 찾아온다. 생각이 정리되고, 욕망이 바뀌고, 더는 이전 방식으로 살 수 없다는 감각이 쌓인 뒤에야 방향이 바뀐다. 이 준비 기간은 성과로 드러나지 않지만, 없었다면 다음 단계 역시 불가능했을 시간이다.
실패로 보인 시간의 숨은 기능
성과 없이 흘러간 시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제외’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기보다는, 무엇이 나에게 맞지 않는지를 걸러낸다. 이 과정은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삶의 방향을 좁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 하나의 기능은 감정의 소화다. 실패, 좌절, 지루함, 무력감 같은 감정은 성과를 내는 속도에서는 처리되지 않는다. 이런 감정들은 멈춰 있는 시간 속에서만 정리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날들 속에서 우리는 감정을 다시 언어로 만들고 자신을 재해석한다.
이 시간을 실패로 규정해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은 다시 성과에 매달린다. 의미를 찾기 전에 결과를 만들려 한다. 그 결과 같은 방식의 반복이 시작된다. 바쁘지만 공허한 삶이다. 실패로 오해한 시간을 충분히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나중에야 말을 건다
성과 없이 흘러간 시간은 침묵한다. 당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간을 무가치하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지난 뒤 그 시기는 전혀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 “그때 네가 멈춰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그 시간의 의미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 태도다. 모든 시간은 즉각적인 설명을 요구받지 않아도 된다. 어떤 시간은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그러니 이렇게 질문을 바꿔볼 수 있다.
“성과가 없었던 그 시간에 나는 무엇을 잃었는가”가 아니라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무엇을 더 이상 붙잡지 않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은 실패가 아니다.
아직 말하지 않았을 뿐인, 준비의 시간이다.
지금 떠올리기 싫은 시기가 있다면, 그 시간을 한 줄로라도 기록해 보길 권한다. 결과가 아니라 감정 위주로 적어보는 것이 좋다. 의미는 나중에 따라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