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중에 예수를 찾아간 니고데모, 그가 진짜 찾은 ‘빛’은 무엇이었나
예루살렘의 한 밤, 지도자이자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조심스럽게 예수를 찾아왔다. 그에게 예수는 단순한 ‘선생’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능력과 진리를 지닌 존재였다.
“라삐여,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그의 입술은 신앙의 언어를 말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두려움’과 ‘혼란’ 속에 있었다.
왜 그는 밤에 예수를 찾았을까?
그것은 두려움의 시간이자, 동시에 진리를 향한 갈망의 시간이었다. 인간의 영혼은 낮의 소음이 사라질 때, 비로소 하나님께 향한다. 니고데모의 밤은 단지 물리적 어둠이 아니라, 영적 갈증의 표현이었다.
니고데모는 종교적으로 완벽했다. 율법에 정통했고, 명예로운 자리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은 그를 흔들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 말씀은 종교의 구조 속에 안주하던 니고데모에게 ‘무너짐의 선언’이었다.
거듭남은 인간의 열심으로 이룰 수 있는 경지나 도덕적 상승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은혜의 사건이다.
예수는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셨다.
신앙은 눈에 보이는 증명보다, 들려오는 영적 바람에 귀 기울이는 행위이다.
바람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 흔적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역사는 계산이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예수를 만난 후 니고데모는 처음에는 침묵했지만, 나중에는 공개적으로 예수를 변호했고, 마지막에는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찾아왔다(요 19:39).
그의 변화는 ‘즉각적인 회심’이 아니라 조용하지만 확실한 성장의 여정이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바람이 일으키는 진짜 기적이다.
신앙은 갑작스러운 번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새벽의 빛처럼 서서히 깨어나는 변화이다.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밤’ 속에서 예수를 찾는다 — 불안, 두려움, 실패의 어둠 속에서.
그러나 그 밤은 절망의 시간이 아니라, 새 생명이 움트는 시간이다.
예수는 어둠 속에 찾아온 이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선언하셨다.
결국 니고데모가 찾은 것은 ‘교리’가 아니라 빛 그 자체, 예수였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종교적 지식이 아니라, 예수를 만나는 생명의 관계가 거듭남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