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은, 멀리서 보면 익숙한 풍경화처럼 보인다. 산이 있고, 들이 있고, 다리가 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이 단순한 ‘풍경’이 아님을 곧 알게 된다. 화면 위로 불규칙하게 남은 질감, 중첩된 붓결, 겹쳐 칠해진 색의 결은 단 한 계절의 장면이 아니다. 작가는 마치 시간의 여러 조각을 한 화면 안에 겹쳐놓듯, 기억 속 ‘자양교’를 다시 그리고 또 그린다.
이때 관람자는 ‘지리산’이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웅장함보다, 오히려 ‘그곳을 건너던 순간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 그림이 진짜로 보여주려는 것은 ‘산의 모습’이 아니라, 그 산을 오르내리며 수없이 건넜던 ‘시간의 감촉’이다. 자양교는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작은 다리다. 이름만 들어서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작가의 시선은 그 ‘평범함’에 머문다. 산을 오르려면, 마을을 향하려면, 이 다리를 반드시 건너야 한다.
작가는 바로 그 ‘지나감의 필연성’을 붙잡는다. 그리하여 다리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기억이 건너는 경로가 된다. 그 위를 흐르는 색의 변화는 단지 시각적 장식이 아니다. 녹색은 젖은 논의 습기, 노랑은 마른 들의 바람, 붉은 점들은 마을의 불빛이자 저녁의 흔적이다. 하나의 색이 다른 색을 덮고, 그 위에 또 다른 색이 배어든다. 그 결과, 자양교는 형태보다 결로 남는다 — 그것은 시간의 결이자 기억의 질감이다. 지리산을 그린다는 것은 흔히 ‘크기’를 그리는 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또 반대로 중심을 낮춘다. 산의 위엄 대신,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시선 높이에 맞춘다. 그 시선은 언제나 다리 위를 통과한다. 이처럼 ‘지리산의 자양교’는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잇는 상징이다. 그 다리를 통해 사람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다리를 건너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작가는 그 반복된 왕복의 순간을 한 화면 안에 고요히 봉인한다. 그래서 이 그림은 움직임이 없는데도, 시간을 품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작품의 표면은 매끈하지 않다.
거친 물감의 두께, 긁힌 자국, 마른 색 위에 덧입혀진 새로운 색, 이 모든 것이 시간의 흔적을 말해준다. 한 번에 완성된 그림이 아니다. 여러 날, 여러 계절의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완성된 풍경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보는 시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 낮의 빛 아래에서는 노란 들이 두드러지고, 저녁의 조명 아래서는 산의 보라빛이 깊게 잠긴다. 그 변화는 단순한 시각 효과가 아니라, 그림 속 ‘시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이 작품을 오래 바라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스쳐 지나가며 보는 것이 어울린다.
지나가며 보았던 풍경, 지나가며 들었던 냄새, 그런 기억이 불쑥 되살아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머무름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지나감’ 속에서 자연스럽게 머물게 한다. 그 조용한 여운이야말로 이 그림이 가진 미덕이다. 지리산의 자양교는, 결국 우리 각자의 기억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다리다. 그곳을 건넜는지, 아니면 아직 건너는 중인지, 이 그림은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쯤을 건너고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