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 "손주는 당신에게나 천사"... 명절은 층간소음 전쟁터

"일 년에 하루인데 좀 참지?"... 뻔뻔한 가족 이기주의

쿵쿵 소리에 무너지는 이웃의 평온, 층간소음은 '폭력'

배려 없는 그들만의 행복은 가짜다

사진=AI생성

"딩동, 딩동!" 설 연휴 첫날 아침부터 112상황실 전화기에 불이 난다. 신고 내용은 기가 막히게 똑같다. "윗집 애들이 뛰는데, 항의하러 갔더니 오히려 적반하장이라 싸움이 났다"는 것이다. 

 

현장에 출동해 보면 풍경은 살벌하다. 윗집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손주들 왔는데 기 좀 죽이지 말라"며 삿대질이고, 아랫집 청년은 충혈된 눈으로 "새벽부터 쿵쿵대는 발소리 소리에 머리가 돌 것 같다"라며 식칼을 쳐다보고 있다. 까치 까치설날은 옛말이고, 이제는 '쿵쿵 쾅쾅 설날'이 되어버렸다.

 

1편 칼럼에서 층간소음을 다뤘지만, 명절의 층간소음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평소의 소음이 생활 습관의 문제라면, 명절 소음은 잘못된 특권 의식의 문제다. 많은 사람이 명절이라는 특수성을 면죄부로 착각한다. "명절이니까 이해해 주겠지!", "애들이 오랜만에 할머니 집 와서 신난 건데 어떡해"라는 안일한 생각이 비극의 씨앗이 된다.

 

냉정하게 말해서, 당신의 손주가 뛰는 모습은 당신 눈에만 예쁘다. 아랫집 사람에게는 그저 천장을 내리찍는 공해이자 고문일 뿐이다. 내가 35년간 경찰 생활을 하며 느낀 건, 범죄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배려 없는 뻔뻔함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것, 이것이 인권 침해의 시작이다.

 

특히 명절에는 다들 예민하다. 장거리 운전, 음식 장만, 친척 간의 눈치싸움 등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한계치에 다다라 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작은 소리도, 피로가 누적된 명절에는 뇌관을 건드리는 기폭제가 된다. 실제로 명절 연휴 기간 층간소음 신고 건수는 평소보다 30~40% 이상 폭증한다. 층간소음이 층간 다툼이 되고, 급기야 흉기 난동으로 번지는 사건이 명절 뉴스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다.

 

"요즘 사람들은 정이 없다"고 혀를 차는 어른들도 있다. 하지만 닭장 같은 아파트에서, 그것도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현대 사회에서 과거의 시골 인심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아랫집 수험생에게, 혹은 밤샘 근무를 마치고 쉬려는 직장인에게 윗집의 가족 파티는 지옥이다. 내 집에서 편안하게 쉴 권리, 즉 주거의 평온은 헌법이 보장하는 가치이며 그 어떤 가족의 화목보다 우선되어야 할 기본권이다.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다. 건축법을 따지기 전에 당장 필요한 건 슬리퍼와 매트라는 물리적 도구, 그리고 먼저 찾아가는 예의다. 손주들이 오기 전 거실에 두툼한 매트를 깔고, 아이들에게 푹신한 슬리퍼를 신기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얘들아, 뛰지 마"라고 말만 하는 건 훈육이 아니다. 뛰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진짜 어른의 역할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선제공격이다. 온 가족이 모이기 전, 과일 바구니라도 들고 아랫집을 먼저 찾아가라. "이번 명절에 손주들이 오는데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최대한 조심 시키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해보라. 미리 사과하는 사람에게 침 뱉는 이웃은 드물다. 층간소음 살인의 대부분은 소음 그 자체보다, "네가 예민한 거야"라는 윗집의 무시하는 태도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가족이 모여 웃고 떠드는 행복, 정말 소중하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가 이웃의 비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설 명절에는 떡국을 끓이기 전에, 아래층에 사는 이웃의 평온을 먼저 생각해보자. 배려는 인격이고, 소음 방지는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층간소음 없는 명절이 진짜 복 받는 명절이다.

 

칼럼니스트 소개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그대는 늘 선물입니다'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작성 2026.02.02 14:49 수정 2026.02.0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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