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위 산업, 세계 안보 지형 속 핵심 주체로 부상
국제 안보 환경의 불안정성이 심화되면서 대한민국 방위 산업이 ‘글로벌 중견국 외교’의 핵심적인 도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방위 산업 수출은 단순한 무기 판매를 넘어, 수출국과 수입국 간의 외교적, 안보적, 군사적 연대를 강화하는 효과를 창출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국방 네트워크를 전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대한민국은 국가적 성장을 도모함은 물론 독자적인 외교적 영향력을 확보하여 중견 국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지난해 한국의 방위 산업 수출 규모는 약 240억 달러를 기록하며, 2022년의 173억 달러를 뛰어넘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특정 강대국의 '세계의 경찰' 역할이 약화되고 국제 분쟁이 증가하는 국제 정세 변화와 맞물려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됩니다.
K-9 자주포 네트워크…장기적 협력의 장을 열다
방위 산업 수출은 무기 판매를 넘어 수출국과 수입국 간의 정치적, 외교적 관계를 한층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의 K-9 자주포를 도입한 노르웨이, 폴란드 등 전 세계 10개국으로 형성된 ‘K-9 네트워크’입니다.
이 네트워크는 유지·보수·정비(MRO) 계약 등을 통해 통상 20~30년에 걸친 경제 협력, 공급망 연계, 인적 교류 확대, 공동 군사 훈련 등 다각적인 부대 효과를 창출하며 군사적, 외교적 유대를 강화합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방위 산업 수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이 외교적으로 존재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국산 무기 수출의 발자취와 성공 신화
대한민국 국방부와 당시 삼성테크윈(現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 K-9 자주포의 첫 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은 2001년 7월입니다. 튀르키예와 10년간 총 300대(약 1조 3천억 원 규모)의 K-9을 현지 생산하는 계약을 맺으며, 국산 무기 체계 수출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핀란드, 노르웨이, 인도, 에스토니아, 호주, 베트남, 루마니아 등 9개국에 K-9 자주포 수출을 성공시키며 현재까지 한국 방위 산업의 부동의 수출 1위 품목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여기에 K-2 전차, FA-50 경공격기, 천궁-II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무 다련장로켓 등 다양한 국산 무기들이 가세하면서, 한국 방위 산업 수출은 2001년 1억 3천5백만 달러에서 작년 240억 달러로 무려 170배 이상 증가하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방위 산업 수출… 장기적 파트너십 구축의 플랫폼
한국을 포함한 K-9 자주포 사용 11개국은 ‘K-9 네트워크’로 통칭됩니다. 이는 방위 산업 수출이 단순히 무기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수출국과 수입국의 경제, 외교, 안보를 장기적으로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부각하는 명칭입니다.
특히 무기 도입 후 최소 20년에서 최대 50년까지 지속되는 유지·보수·정비(MRO), 운용 인력 훈련,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은 당사국 간의 경제적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듭니다.
방위 산업 관계자는 “무기 수출은 현지 생산이나 기술 이전 조건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과정에서 에너지, 인프라 등 다른 산업 분야로 경제 협력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동일한 무기 체계를 사용한다는 것은 두 국가의 외교적, 군사적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군대는 통신망을 공유하고 공동 훈련을 진행하면서 단순 우방국 이상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군사 동맹으로 심화되고, 유사시 함께 대응할 수 있는 ‘안보 연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폴란드의 K-2 전차 생산 공장이나 호주의 K-9 자주포 생산 공장은 한반도 유사시 우리 군이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장비 및 탄약 공급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외교 관계가 방위 산업 수출로 이어지고, 국방 제품이 다시 외교적 연대를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주변국 진출의 기회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이 이미 K-9을 도입한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영향을 받아 K-9 도입을 검토하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최근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들이 페루와 이집트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 역시 남미와 아프리카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입니다.
석종건 전 방위사업청장은 “방위 산업 제품 수출이 가격과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수출국의 외교·문화적 신뢰와 장기적 관계를 고려하는 것은 이러한 특성에 기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국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판매국과 수입국 간에 강력한 정치·경제적 결속 효과를 창출하는 방위 산업 수출을 확대함으로써 한국은 ‘민주주의 무기고’로 자리매김 함과 동시에 진정한 ‘중견 국가’의 핵심 주체로 도약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K-방위 산업의 기회와 과제
현재 한국 방위 산업 수출 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 유리한 상황입니다. 국제 안보 질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국가가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질서 수호를 위해 개입하지 않고, 자국 이익을 위해 무력 사용도 불사하는 상황에서 ‘국제 사회의 힘의 역학’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여 각국은 국방비 지출을 급격히 늘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유럽 및 동유럽 국가들은 핵심 시장으로 떠올랐습니다. 과거 미국에 국방을 의존했던 유럽 국가들이 재무장에 착수하고 있지만, 서방 방위 산업 강국들의 생산 능력으로는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역시 지역 분쟁의 여파로 무기 수입을 늘리고 있습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0년 1조 9천8백억 달러였던 세계 군사비 지출은 지난해 2조 8천억 달러를 넘어섰고, 올해는 3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지만 고부가가치 시장 진출을 위한 정교한 전략 수립과 제도 보완은 시급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작년 한국이 호주 호위함 사업과 폴란드 잠수함 사업 등에서 일본과 스웨덴에 연달아 수주 실패를 경험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호주 호위함 사업에서는 한국이 호주가 요구하는 세부 사양을 사전에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입찰에서 탈락했으며, 폴란드에서는 경쟁국 스웨덴이 제시한 폴란드 조선소 투자 및 무기 구매 등 ‘절충 교역 패키지’에 밀려 아쉬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현재 입찰이 진행 중인 캐나다의 3천 톤급 잠수함 사업 또한 독일에 밀려 수주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 국가안보실 방위산업담당관은 “캐나다는 방위 산업 제품 수입에 따른 대응 구매나 경제적 협력을 요구하는데 한국에는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이는 독일과의 입찰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방위 산업 관계자는 “그동안 한국 기업과 정부는 재정 여력이 약한 국가가 대물 변제 등 한국에 법적 근거가 없는 요구를 할 경우 수출을 포기한 사례도 적지 않다”며 “정부가 대기업 특혜 논란 등을 우려하여 관련 제도 도입을 주저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상대국에 금융 지원은 물론 무상 원조까지 허용하는 대외군사판매제도(FMS)를, 프랑스는 다양한 방식의 절충 교역을 허용하는 ‘정부 간 계약법(G2G)’과 같은 수출 지원 제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정부의 외교적 역량 강화 또한 필수적입니다. 부품이나 기술을 공급하는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은 한국이 방위 산업 무기를 수출할 때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한국이 K-9 자주포에 독일제 엔진을 사용하던 시기, 독일 정부가 인권 침해 우려 등을 내세워 반대하여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로의 K-9 수출이 무산된 사례가 있습니다.
한 전직 외교관은 “한국산 방위 산업 제품 수출이 늘어날수록 수입 국가와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들과 외교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러한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를 사전에 면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