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는 한순간 타올랐다가 소리 없이 꺼지는 촛불과도 같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이들의 생명 모두 그 자체로 유한한 약속이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떠나는 순례자인지도 모른다. 이런 까닭에 불유교경에서 ‘세상의 삶은 모두 덧없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라는 “세개무상 회필유리(世皆無常 會必有離)”라고 했나보다.
나이 70대 중반에 들어서고 보니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소식은 언제 들었는지 기억조차 없을 만큼 가물가물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부고장만 날아든다. 머잖은 날, 내 부고도 자식들 손에 만들어질 테지만, 그보다 먼저 받은 어느 부고 하나는 지금도 내 가슴을 아리게 하고 있다.
정년퇴임과 함께 도시를 떠나 시골로 삶의 보금자리를 옮긴 뒤 처음 만난, 원주민형님의 죽음이다. 그는 시골 생활이 서툰 나를 동생처럼 아꼈고, 나는 그에게 알게 모르게 의지했었다. 마치 친형처럼… 고구마 수확 때면 가장 좋은 것만 골라 경운기로 집까지 날라주던 따뜻한 손길, 김장철이면 먹고도 남을 만큼의 배추며 무를 아낌없이 내어주시던 그 마음. 마을 모임에서 형님 아우 하며 함께 마신 막걸리 한 잔에 서로 웃고 나눈 소소한 이야기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흘려보낸 것이 없었다.
그런 형님이, 어느 해 봄날 정월 대보름, 오곡밥을 대접받으러 마을 노인정으로 가던 길에 쓰러졌다. 마을 주민에 의해 발견되어 심폐소생술을 하였지만, 곧 구급차가 도착했었지만 소용없었다. 남은 시간은 그에게 더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형님은 황망하게 내 곁을 떠나버렸다. 예고 없이 맞이한 형님의 죽음 앞에 나는 할 말을 잊은 채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삶은 언젠가 끝나며, 죽음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그날처럼 실감한 적이 없었다. 형님 역시 오래전부터 심장에 병을 갖고 있었고, 코로나까지 앓았으나 그렇게 빨리 작별할 줄은 미처 몰랐었다. 이처럼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남의 일 같지만, 언제나 우리 삶 바로 옆에서 조용히 발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태어남이 내 뜻이 아니었듯, 죽음 역시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살아가는 매 순간이 얼마나 기적 같고 소중한지 우리는 자주 잊으며 산다.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을 아껴두다가, 끝내 전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언제든 볼 수 있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소중한 인연들을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제야 나는 ‘후회’라는 감정을 배우고 있다. 그토록 아끼던 말들, “사랑한다.”고, “고맙다”라고, “잘 지내냐“고 묻는 말, 왜 그리도 망설였을까.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서 남는 건 아쉬움뿐이라는데. 그래서 오늘은 오래된 주소록을 꺼내 보려 한다. 그리고 별다른 이유 없이, 지인 누군가에게 “무탈하냐?”고, “잘 있느냐?‘’고, 전화 한 통 걸어보려 한다. 그 인사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자의 의무이자 축복이 아닐까.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것은 그 짧은 인연 속에 서로 나눈 보석처럼 빛나는 진심일 것이다.
[이윤배]
(현)조선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이메일 : ybl7736@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