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용실 의자 위에서 마주한 시간의 간극
아이와 함께 미용실에 다녀왔던 날이었다. 의자 위에 앉아 거울을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은 제법 차분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처음 미용실에 들어섰던 날, 바리깡 소리에 세상이 무너질 듯 울먹이던 얼굴. 두 손을 휘저으며 도망치려던 작은 몸. 꽉 붙잡아도 잡히지 않던 그 마음이 아직도 또렷한데, 오늘의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울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자라고 있던 것들
아이의 성장은 언제나 이렇게 조용하다. 소란스럽게 알려주지 않고,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만든다. 가위 소리 사이로 조금씩 다듬어지는 머리처럼, 아이의 하루도 그렇게 자라 있었다.
바리깡을 피해 몸부림치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기다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두려움을 견디는 법을, 시간을 버티는 법을 스스로 익혀가고 있었다.
“이번 머리는 마음에 들어.”
머리를 다 자르고 난 뒤, 아이가 말했다. “아빠, 이번 머리는 마음에 들어. 앞으로 이렇게 잘라 달라고 말해줘.”
그 한마디에 나는 알았다. 아이의 성장은 울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담담한 문장 하나로 증명된다는 것을. 부모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데, 아이는 이미 자기만의 시간을 건너고 있었다.
부모는 늘 조금 늦게 자란다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가장 솔직한 감정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성장은 늘 부모보다 빠르고, 부모의 마음은 늘 한 박자 늦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는 이미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있다.
우리는 늘 “벌써?”라는 말로 아이의 성장을 확인한다. 그 말 속에는 놀람과 아쉬움, 그리고 고마움이 함께 섞여 있다.
일상이라는 이름의 성장 기록
미용실은 특별한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날의 미용실은 분명 하나의 장면이었다. 아이가 울음을 내려놓고 의젓함을 선택한 순간, 부모가 아이의 성장을 다시 배우게 된 순간이었다.
아이는 그렇게 조용히 자라고, 부모는 그렇게 한 번 더 마음을 정리한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지금, 아이의 현재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아이를 붙잡고 있는가?
아이의 성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만 소리 없이 지나갈 뿐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붙잡음이 아니라, 알아차림일지도 모른다. 그 날 미용실에서 나는 머리를 자라는 아이를 본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그리고 그 장면은 이렇게 조용히 내 마음에 남았다.
그렇게 몸부림치던 게 엊그제였는데,
아이의 성장은 이미 다음 의자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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