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하루가 빠르게 흘러갈수록 마음이 어디에서 흔들리고 어디에서 잠시 멈추는지 알지 못한 채 지나갈 때가 있다. 차갑게 느껴지는 말 한 줄에도 마음이 움츠러들고, 반대로 따뜻한 눈빛 하나가 괜스레 위로되는 순간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삶의 속도를 천천히 늦추고 마음의 결을 조용히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준석의 ON 시(詩)그널’은 그런 시간 속에서 독자와 함께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칼럼이다. 35년 동안 경찰 현장에서 약자를 보호하고 인권과 조직문화를 지켜온 시선으로, 일상에서 쉽게 놓치고 지나가는 감정의 온도를 시(詩)를 통해 다시 비춰보고자 한다. 시가 전해오는 작은 떨림이 하루의 방향을 부드럽게 바꿔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이 글을 시작한다.
35년 제복을 입고 거친 현장을 누비다 보니, 참 많은 눈물을 보았다.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쏟아내는 오열, 그리고 안도감에 소리 없이 툭 떨어지는 눈물까지. 김미자 시인의 '꽃물'을 읽는데, 문득 그 수많은 눈물 자국들이 떠올랐다. 시인은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에서 흐느낌을 보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낙화에서 눈물을 읽어냈다.

꽃물
꽃잎 흔들리는 바람 앞에서
흐느낌을 보았고
떨어지는 꽃잎에서
눈물을 보았다
여전히
무성한 꽃물은
아래로만 흐를 뿐
꽃을 피우겠다며
다시 만나야겠다며
그리움 속으로
그대 생각이 흐른다.
_김미자
세상 모든 무거운 것들은 아래로 떨어진다. 꽃잎도 그렇고, 눈물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다. 시인은 "무성한 꽃물은 아래로만 흐를 뿐"이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중력을 거스를 수 없듯,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깊어지면 마음은 자꾸만 낮은 곳으로, 더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기 마련이다. 그걸 막아보려 애쓰는 것보다 차라리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사랑의 이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가 가슴을 치는 건, 그 떨어짐을 '끝'이라 하지 않고 '약속'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히고, 땅으로 스며든 꽃물이 뿌리를 적셔야 다시 새 꽃을 피울 수 있다. "다시 만나야겠다며" 그리움 속으로 흐르는 그대 생각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언젠가 기필코 다시 피어나겠다는 생명력이다.
경찰 생활을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억지로 멈춰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아프면 아픈 데로 흘려보내야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 지금 당장 내 마음이 꽃잎처럼 툭툭 떨어지는 것 같아도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더 단단한 사랑으로 다시 만나기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스며드는 과정일 테니까.
오늘 밤은 떨어지는 꽃잎 하나에도 안부를 묻고 싶다. 내 그리움이 흘러 닿을 그곳에서, 당신은 잘 지내고 있는지.
시인 프로필

김미자 시인은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그리움은 늘 바쁘다'가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윤보영 감성시학교 사무국장과 계간문예 사무차장을 맡아 문학의 저변을 넓히는 데 힘쓰고 있다. 시뿐만 아니라 수필, 아동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끊임없이 공부하며 낭송가로서도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